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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 2024년 11월 순국 Inside 길 따라 얼 따라 우리문화 사랑방 樹樹薰風葉欲齊(수수훈풍엽욕 제) 나무 사이에 더운 바람 불어 잎들이 나란한데 正濃黑雨數峯西(정농흑우수봉 서) 몇몇 봉우리 서쪽에 비 품은 구름 새까맣네 小蛙一種靑於艾(소와일종청어 애) 쑥빛보다 더 파란 한 마리 청개구리 跳上蕉梢效鵲啼(도상초초효작 제) 파초 잎에 뛰어올라 까치 울 음 흉내 내네 이는 추사 김정희가 쓴 글 가운 데 한여름 소나기가 내린 정경을 노래한 ‘취우(驟雨)’란 제목의 한 시다. 취우(驟雨)는 소나기를 말하 는데 한여름 불볕더위가 극성을 부릴 때 사람들이 기다리는 단비 다. 지루하게 오래 내려 기청제(祈 晴祭)를 지내야 하는 장맛비와는 달리 후두둑 내리기 시작하여 시 원하게 쏟아붓고는 저 멀리 예쁜 무지개를 하늘에 걸어 놓고 언제 그랬냐는 듯 사그라지는 비다. 아 마도 추사는 벗 초의가 여름날 소 나기처럼 자신을 찾아오길 목이 빠지게 기다렸는지도 모른다. 추사 김정희는 평생 40통의 한 글 편지를 남겼다. 그 40통 가운 2000년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 2011년 한국문화사랑협회를 설립하여 한국문화 를 널리 알리고 있다. 또한. 2015년 한국문화를 특화한 국내 유일의 한국문화 전문 지 인터넷신문 『우리문화신문』을 창간하여 발행인을 맡아 운영하고 있다. 지은 책 으로는 『맛깔스런 우리문화속풀이 31가지』, 『하루하루가 잔치로세(2011년 문화 관광부 우수도서)』, 『나눔을 실천한 한국의 명문종가』, 『아름다운 우리문화 산책』, 『한국인이 알아야 할 한국문화 이야기』 등이 있다. 필자 김영조 데 며느리에게 보낸 2통을 빼곤 모두 부인 예안(禮安) 이씨(李氏) 에게 쓴 것이다. 추사는 첫째 부인 한산 이씨가 혼인 5년 만에 죽자, 삼년상을 마치고 예안 이씨와 재 혼해서 20여 년을 살았다. 추사는 예안 이씨를 무척 사랑했으며 이 것이 38통의 한글편지에 고스란 히 담겨 있다. 추사는 20여 년 동안이나 유배 생활을 한 까닭에 아내에 대한 애 틋한 마음을 편지로 썼던 것이다. 하지만 당시 제주도로 유배가 있 는 동안 쓴 편지는 빠르면 두 달, 늦으면 일곱 달이나 걸렸다. 편지 에서 추사는 병약한 몸으로 지아 비가 없는 20여 년 동안 효성을 다하고 덕을 쌓은 이 씨에게 늘 고 맙고 미안한 마음을 표했고, 이에 이씨는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한 것 뿐이라며 쑥스러워했다. 그런데 추사가 대성통곡(大聲 痛哭)하며 쓴 ‘도망(悼亡)’ 곧 ‘죽은 아내를 생각하여 슬퍼함’이란 한 시가 있다. 아내가 죽은 줄도 모르 고 유배지 제주도 음식이 맞지 않 음을 투정하여 젓갈 등을 보내달 라고 했던 추사였기에 더욱 이런 시를 쓸 수밖에 없었을 테다. 추사 는 시에서 내세에는 부부가 서로 바꿔 태어나 자신이 죽고 아내가 천리 먼 제주도에 살아남아 아내 를 잃은 자신의 이 슬픔을 알게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지금, 추사와 초의 두 사람은 가 고 없다. 다만 제주 대정의 추사 유배지에 추사와 초의를 본떠 만 든 밀랍인형만이 찻잔을 마주하 고 있을 뿐이다. 비록 밀랍인형으 로 남아있지만, 추사와 초의가 꽃 피운 우정만은 시대를 초월하여 은은하게 향기를 뿜어내고 있다. 추사 유배지를 둘러본 뒤에는 추 사 김정희의 삶이 오롯이 담긴 추 사관(秋史館)으로 발길을 돌리는 것이 나의 김정희 유배지 순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