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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 2024년 8월 순국 Inside  길 따라 얼 따라 순국 역사기행 일석기념관이 있는 자리는 1930년대 경성제대 교수 미야 케가 살던 관사가 있던 곳(동숭 동 25)이기도 하다. 1934년 서 대문경찰서를 탈출한 전설적인 사회주의계 독립운동가 이재유 (1903~1944)는 이곳 미야케 교 수 집으로 숨어들어 다다미 마룻 바닥 아래 토굴에서 6개월 정도 살았다. ‘신출괴몰’ 이재유는 미야 케 교수가 체포되는 상황에서도 이곳을 벗어나 신당동에 새로운 은거지를 마련하였고, 이관술, 박 진홍 등과 함께 경성재건그룹을 조직하여 독립운동을 계속했다. 대한조국주권수호일념비와 동성 중고생들의 4·19혁명 동성중·고는 한국광복군에서 활약한 김준엽(1920~2011)을 비 롯한 한국의 젊은이들이 학병으 로 끌려가기 직전 일제로부터 정 신교육을 받았던 곳이다. 동성중· 고 입구에는 1940년대 학병으로 동원된 4,385명의 아픔을 기억하 고자 ‘大韓祖國主權守護一念碑(대 한조국주권수호일념비)’가 세워 져 있다. 일제의 학병동원에 대한 반발은 거셌는데, 중국전선에 배 치된 김준엽, 장준하 등 일부 학병 은 일본군을 탈출하여 한국광복 군에 참여하기도 했다. 동성중·고 학생들은 1960년 4·19혁명 당시 인근의 대광고 학 생들과 더불어 가장 헌신적으로 시위에 동참한 중고생들이라 할 수 있다. 동성중·고 학생들은 4 월 19일 당일, 전교생이 참여하 여 3·15부정선 거를 규탄하면 서 종로5가를 거쳐 중앙청과 경무대 앞까지 진출하였다. 그 과정에서 천복 수 학생이 경무 대 앞에서 경찰 이 쏜 총에 사 망하는 아픔도 감내해야 했다. 광주학생독립운동과 여운형 암살사건의 현장 혜화동로터리 혜화동로터리는 1929년 11월 3일의 광주학생독립운동이 서울 로 확산되던 그해 12월 9일, 경신 학교 학생 300여 명이 가두로 진 출하여 보성고보 학생 400여 명 과 합류해 독립만세시위를 벌인 곳이다. 광주학생의 시위에 호응 한 서울지역 학생의 시위는 12월 2일 밤과 3일 새벽 식민지 노예교 육에 맞서 총궐기할 것을 촉구하 는 격문이 경성제국대학을 비롯 하여 중앙고보, 중동학교, 경성여 자상업 등과 시내 요소에 배포되 면서 촉발되었다. 이러한 흐름이 12월 9일에 경신학교와 보성고 ➍ ➍  동성중고 앞에 세워진 ‘대한조국주권수호일념비’  ➎  ‘4·19의 횃불 바로 여기에서’ 기념비(동성중고 앞) 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