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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국 역사기행 ➋ • 한국통감과 조선총독의 일본 현장을 가다 ① 121 째가 ‘조선총독 이하 고관’이다. 의열단에서는 ‘칠가살’과 함께 ‘오 파괴(五破壞)’를 정하기도 했는데, 그 대상은 ‘조선총독부’가 첫째이 고 ‘동양척식회사’ 등이 그 뒤를 따랐다. 실제로 의열단원 가운데는 ‘칠 가살’과 ‘오파괴’를 실행에 옮겼던 인물들이 있었다. 1919년 9월 사 이토 마코토[齋藤實, 1858~1936] 가 신임총독으로 부임하여 서울 역에서 남산 총독관저로 향하는 순간 대한노인단 소속인 64세의 강우규(姜宇奎, 1855~1920) 의 사가 폭탄을 투척했다. 1921년에 김익상(金益相, 1895~1941) 의사 는 남산 일대에 있었던 조선총독 부(1926년에 경복궁으로 옮김)에 폭탄을 던졌다. 조선인들에게 있 어서 살해 대상 제1순위는 조선 총독이었다. 한국통감과 조선총독은 몇 명? 한국통감과 조선총독은 모두 합쳐 10인이었다. 통감이 3대 3 인, 총독은 9대 8인이었다. 이 가 운데 1인은 통감을 하다가 총독이 되었다. 우리는 반드시 이들의 이 름과 출신지 정도는 알아두어야 한다. 혹시 일본 여행을 할 기회라 도 생겨서 방문하게 되면 의미없 이 지나치는 경우는 없어야 할 것 이다. 위의 <표>에서 몇가지 특징적 인 점을 찾아보자. 먼저 데라우치 마사타케[寺 内 正毅, 1852~1919] 이다. 한국통감과 조선총독을 역 임한 유일한 인물이다. 통감으로 부임하여 경술국치를 이끌어내고 초대 조선총독이 되었다. 재임기 간은 통감과 총독을 합하여 6년여 인데, 대부분 총독의 자리에 있었 다. 그의 임무는 조선을 합병하고, 총독이 되어 지배하는 것이었다. 다음으로 사이토 마코토는 3대 구 분 대 수 이 름 재임기간 출신지역(현 지명) 재임시기 기간 한국통감 임시 하세가와 요시미치 長谷川好道 1906.2~1906.3 1월 야마구치현 이와쿠니 1 이토 히로부미 伊藤博文 1905.12~1909.6 3년 6월 야마구치현 히카리 2 소네 아라스케 曾禰荒助 1909.6~1910.5. 9월 야마쿠치현 나가토 3 데라우치 마사타케 데라우치 마사타케 寺内正毅 寺内正毅 1910.5~1910.10 5월 야마구치현 야마구치 야마구치현 야마구치 조선총독 1 1910.10~1916.10 6년 2 하세가와 요시미치 長谷川好道 1916.10~1919.8 2년 10월 야마구치현 이와쿠니 3 사이토 마코토 齋藤實 1919.8~1927.12 8년 4월 이와테현 미즈사와 4 야마나시 한조 山梨半造 1927.12~1929.8 1년 9월 가나가와현 히라쓰가 5 사이토 마코토 齋藤實 1929.8~1931.6 1년 10월 이와테현 미즈사와 6 우가키 가즈시케 宇垣一成 1931.6~1936.8 5년 2월 오카야마현 오우치 7 미나미 지로 南次郞 1936.8~1942.5 5년 9월 오이타현 히지 8 고이소 구니아키 小磯國昭 1942.5~1944.7 2년 2월 도치키현 우쓰노미야 9 아베 노부유키 阿部信行 1944.7~1945.9 1년 2월 이시가와현 가나자와 <표> 역대 한국통감과 조선총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