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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 2025년 5월 순국 Inside  길 따라 얼 따라 순국 역사기행 ① 인 부당노동행위 철회하라, 노동 3권 보장하라!” 등의 구호를 외치 며 회사 옥상에서 경찰과 회사 측 의 폭력에 맞서던 중 자신의 몸을 불살랐다. 박영진은 병원에서 “전 태일 선배가 못다 한 일을 내가 하 겠다. 1천만 노동자의 권리를 찾 겠다. 끝까지 투쟁해야 한다”라는 유언을 남기고 운명하였다. 구로공단에 있던 ㈜서광에서 회사의 노조 탄압에 항의하며 분 신한 김종수, 군 수사기관의 미행 을 피하다 시흥역(현 금천구청역) 에서 기차에 치여 숨진 노동운동 가 박태순도 금천이 기억해야할 노동 열사이다. 구로동맹파업의 현장, 지금은 서 울디지털산업단지(G밸리)로 1980~90년대 구로공단의 노 동자들은 노동자의 사회·경제적 권리 확보를 위해 민조노조운동 에 활발히 나섰다. 그 중 구로동맹 파업은 구로공단 민주노조운동의 대표적인 사례였다. 6·25한국전쟁 이후 벌어진 최초의 동맹 파업인 구로동맹파 업은 1985년 6월 24 일부터 6일 동안 계 속되었다. 동맹파업 의 발단은 임금인상 투쟁을 빌미로 한 대 우어패럴 노조위원 장 등 3명의 노조간 부를 구속한 사건이 었다. 파업을 시작한 대우어패럴 노동조 합은 물론 동맹파업 에 동참한 선일섬유, 효성물산, 가리봉전 자, 부흥사, 세진전 자, 룸코리아, 남성전기 등 구로 공단의 여러 노동조합은 이를 민 주노조에 대한 탄압으로 인식하 였고, 조만간 자신들도 같은 처지 에 놓일 수 있다는 위기감을 느꼈 다. 전두환 군사정권은 경찰을 동 원하여 파업 해산에 나서는 한편, 파업을 주도한 43명의 노동자를 구속하고 1,500여 명의 노동자를 해고하였다. 하지만 노동자들은 구로동맹파 업을 계기로 서노련(서울노동운 ➑  박영진 열사 장례식에서 추 모사를 하고 있는 이소선 여사 (마석모란공원, 박영진 · 김종수 열사추모사업회 제공) ➒  서울시가 설치한 ‘구로동맹 파업 현장’ 동판(가운데)에 답 사자들이 발을 모아 기념하고  있다. ➓  금천구에서 대우어패럴 자 리에 설치한 안내판 ➑ ➒ 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