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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 2025년 2월 순국 Inside 길 따라 얼 따라 순국 역사기행 ① 한 사람들을 위해 2백 채의 임대 주택을 지어 공급하면서 생긴 마 을이었다. 종연방적에서 ‘노예노동’에 시달린 여성노동자 문래동 영단주택단지에서 북쪽 으로 건너면 만나는 아파트단지 는 1936년부터 가동된 일본 미쓰 이재벌 계열의 종연방적(鐘淵紡 績, 카네보) 영등포공장이 있던 곳 이다. 종연방적(경성지점)은 전국에 서 어린 여성노동자 수천 명을 끌 어들여 가혹한 노동 착취로 사업 을 확장해나갔지만, 이에 대한 반 발도 만만치 않았다. 공장이 가동 된 1936년부터 곧바로 장시간 노동과 부실한 급식에 시달리다가 4명 의 여성노동자가 탈출했 다는 기사가 언론에 등 장한 것을 시작으로 매 년 여성노동자의 탈출 소식이 끊이지 않았다. 종연방적의 여성노동자 들은 사실상 기숙사에 감금된 상태에서 강제노 동에 시달리고 있었던 것이다. 아시아·태평양 전쟁기인 1941년에는 10살의 어 린아이가 만주로 징용 끌려갈 처 지의 아버지를 대신하여 종연방 적 영등포공장에서 ‘노예노동’에 시달렸다는 보고도 있다. 종연방적은 광복이후 태창방 직을 거쳐 방림방적으로 바뀌었 는데, 방림방적 시절인 1970~80 년대 이곳에서는 1977년의 체불 임금 지급요구 농성투쟁을 비롯 하여 여성노동자들의 민주노조운 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문래공원에 박정희 흉상이 있는 이유 2호선 전철 문래역의 서편에 있는 문래공원은 5·16 군사정변 당시 제6관구사령부가 있던 곳 이다. 군사정변이 일어나기 1년 전 제6관구사령부 사령관을 맡기 도 했던 박정희는 측근인 김재춘 (1927~2014)이 여전히 참모장으 로 있던 이곳을 군사정변의 지휘 소로 삼았다. 군사정변 세력은 이 를 기념하기 위해 1966년 이곳 에 박정희(1917~1979)의 흉상을 세웠고, 흉상 전면에는 ‘5·16혁명 발상지’라는 문구를 새겼다. 5·16 은 이미 ‘혁명이 아니라 군사정 변’으로 정리된 지 오래지만, 여 전히 이곳에 있는 박정희 흉상의 존폐를 둘러싼 갈등은 끊이지 않 고 있다. 공원 안에는 제6관구사 령부가 사용하던 지하벙커도 남 아 있다. 제6관구사령부는 정치인에 대 한 끔찍한 고문이 펼쳐진 곳이기 도 하다. 박정희가 1972년 ‘10월 유신’이라는 미명하에 친위쿠데 타를 일으켰을 당시 국회 해산과 함께 김녹영, 최형우, 이세규, 이 종남, 김경인, 박종률 등 야당 정 치인 6명이 강제 연행되어 이곳 헌병중대에서 고문을 당했다. 이 들은 함부로 말도 못하다가 1975 년 2월 28일에야 이 사실을 기자 회견을 통해 폭로했다. 이들은 ‘고 종연방적 여공들의 탈출 소식을 전하고 있는 언론 보도 기사(『조선일보』, 1937.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