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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 2024년 8월 순국 Inside  길 따라 얼 따라 순국 역사기행 독립선언에 참여한 후 귀국하여 정신여학교를 기반으로 최초의 전 국적 여성조직인 대한민국애국부 인회 활동을 벌였다. 하지만 독립 운동의 미래에 대한 회의를 품은 내부 밀고자 오현주로 인해 김마 리아, 황애시덕을 비롯한 간부들 이 대구경찰서에 대거 연행되고 말았다. 혹독한 고문으로 생사의 기로에 섰던 김마리아는 병보석으 로 나와 세브란스병원에서 치료받 던 중 변복을 하고 병원을 빠져나 와 인천을 거쳐 중국으로 탈출하 는데 성공하였다. 당시에는 이 놀 라운 사건을 ‘김마리아 탈주사건’ 이라고 불렀다. 상하이에 도착한 김마리아는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임시의정원 의원이 되었는데, 이 역시 여성 최초의 임시의정원 의 원이었다. 경성공업전문학교와 공업전습소 터 방송대가 있는 곳은 1899년 에 출범한 관립상공학교에 그 뿌 리를 두고 있는 경성공업전문학 교와 공업전습소가 있던 곳이다. 이 학교는 박찬익(1884~1949) 을 비롯한 민족주의계 독립운동 가와 김재봉(1891-1944)을 비롯 한 사회주의계 독립운동가를 다 수 배출하였다. 1919년 3·1운동 당시 경성공업전문은 김대우(이 후 친일파로 변절)를 대표로, 공 업전습소는 이형영(1896~1923) 을 대표로 세워 만세운동에 적극 참여하였다. 공업전습소 출신의 윤자영(1894~1938)은 경성전수 학교 학생대표로 만세운동을 주 도하였다. 이화동 사거리 경성공 업전문 건너편에는 3·1운동 당 시 한위건(1896~1937), 김형기 5월광주의 진실을 알리고자 김의기 열사 가 작성한 「동포에게 드리는 글」 옛 정신여고 교정에 있는 김마리아상  3·1운동 당시 경성전수학교 학생대표를  맡았던 공업전습소 출신 윤자영의 감옥  수감 모습(국사편찬위원회 「일제감시대상  인물카드」) 연동교회역사관에 전시되어 있는 연동교 회 출신 애국지사 18인 전시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