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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 2023년 12월 순국 Inside 길 따라 얼 따라 우리문화 사랑방 개의 구멍으로 향 연기가 자연스럽 게 피어오르는 정 교함과 아름다움 을 완벽하게 갖춰 동아시아 고대 금 속 공예의 으뜸이 라는 평가를 받는 다. 그뿐만이 아니 라 신라의 진지왕 은 도화녀와 침실 에서 향을 사용했 는데, 그 향내가 이레 동안이나 지 워지지 않았다는 기록이 있다. 그리 고 아랍 지역에 사 향과 침향을 수출 하였고, 일본에도 용뇌향을 비롯한 여러 종류의 향을 수출했다고 한다. 중국 문헌에 따르 면, 신라에서는 남 녀노소가 신분의 귀천과 관계없이 향낭, 곧 향주머 니를 찼다고 한다. 이 밖에도 고려인들은 난탕(蘭 湯)이라 하여 난초를 우린 물로 목욕하거나 향수 물로 목욕함으 로써 몸에서 향내를 발산시켰으 며, 초에 난초 향유를 혼합함으로 써 향내가 방안에 그윽해지도록 하였다는 기록도 있다. 고려시대뿐만 아니라 조선시대 에도 일부 사람들은 향을 먹기도 한 것으로 추측되는데 향을 복용 한 향낭(香娘: 동정녀)을 부여안고 회춘(回春)을 기대했다. 또 조선시 대엔 부부가 잠자리에 들 때 사향 을 두고 난향의 촛불을 켜두었다. 모든 여자가 향주머니를 노리개 로 찰 정도였다. 부모의 처소에 아 침 문안을 드리러 갈 때는 반드시 향주머니를 차는 것이 법도로 되 어 있었다. 중앙박물관에 국보로 지정된 ‘청자 사자장식 뚜껑 향로’와 ‘청자 투각 칠보무늬 향로’뿐 아니라 다 양한 향로가 있음은 우리 겨레가 오랫동안 향생활을 해왔다는 증 거이다. 또 한 가지, 우리나라 옛사람 들 특히 여성들이 가장 즐겨 사용 한 향은 사향(麝香)이었다고 하는 데 그 까닭은 사향이 우리나라 팔 도 각지에서 생산되고 있었기 때 문이기도 하지만, 상비 의약품으 로서 효용 값어치가 높았기 때문 청동박산로, 평양 석암리 9호 무덤, 낙랑, 높이 20.3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국보 백제금동대향로 그림(그림, 이무성 작가) 두 세 부분으로 구성됐으며, 신선 계, 인간계, 저승계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만들어졌는데 봉황 앞 가슴과 악사(樂士)상 앞뒤에는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