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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국 역사기행 ➊ • 서울, 독립운동과 역사의 현장을 가다 ㉑ 119 금천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박시 창(1900-1986)이 학교 교정에 은 행나무 식수를 한 것이 계기가 되 었다. 박은식의 7촌 조카였던 박 시창은 여섯 살 때 박은식의 양자 로 입양되었다. 1916년 아버지 박은식을 찾아 연해주로 망명한 박시창은 한국광복군 참모를 지 내는 등 줄곧 독립운동에 헌신하 였고, 광복 이후에는 광복회 회장 도 지냈다. 금천 평화의 소녀상 금천구청 광장 앞에는 2017년 8·15광복절에 맞춰 세워진 ‘금천 평화의 소녀상’이 있다. 일본 대사관 앞에 ‘평화의 소녀 상’이 처음 세워진 것은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명예와 인권 회복을 염원하며 진행한 수요 집 회가 1,000회를 맞은 2011년 12 월 14일이었다. 평화의 소녀상은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5년 한· 일정상 간에 이루어진 ‘12·28합 의’를 계기로 전국으로 확산되었 다. 피해자와의 합의도 없이 일 본군 ‘위안부’ 문제의 ‘최종적이 고 불가역적인 해결’을 선언하자 분노한 국민은 일본군 ‘위안부’의 아픔을 잊지 말자는 취지에서 전 국적으로 평화의 소녀상 건립 운 동을 일으켰던 것이다. 금천 평화 의 소녀상 건립운동도 그 중 하나 였다. 금천 평화의 소녀상은 일본 대 사관 앞 소녀상과는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왼손에는 번데기가 있고, 오른손으로는 나비를 날리 는 모습이다. 제작에 참여한 배 철호 작가에 따르면 “왼손의 번 데기는 나비가 되기 이전의 과거 로 상처받은 과거의 영혼을 의미 하고, 미래를 의미하는 오른손의 나비는 과거의 상처를 날려 보내 고 새로운 희망을 만들어 스스로 상처를 치유한다는 의미를 담았 다”고 한다. 시흥지구 전투사령부 터, 한강선 방어전투와 김홍일 장군 금천구청 청사 뒤편에 있는 금 나래중앙공원에는 ‘시흥지구 전 투사령부 터’ 표지석과 ‘육군보병 학교 창설지’ 표지석이 나란히 세 워져 있다. 6·25한국전쟁이 벌어진 직후인 1950년 6월 28일, 육군본부를 수 원농업시험장으로 이동시킨 채병 덕 육군총참모장은 육군보병학교 에 육군참모학교 교장인 김홍일 (1898~1980)을 사령관으로 하는 시흥지구 전투사령부를 설치하였 다. 시흥지구 전투사령부는 후퇴 하는 국군을 모아 혼성사단을 긴 급 편성하여 7월 3일까지 한강선 방어전투를 성공리에 진행한 결 과 북한군의 남진 속도를 늦춤으 로써 전쟁 초기 위기에 몰린 한국 군을 재정비하는 시간과 미군의 도착 시간을 버는 데 크게 기여하 였다. 한강방어선전투를 이끈 김홍일 은 독립운동의 역사에서도 우리 에게 낯선 인물이 아니다. 김홍일 은 1940년대에는 한국광복군 참 모장을 지냈고, 중국혁명군 장교 로 근무하던 1932년에는 이봉창 의사와 윤봉길 의사의 의거에 사 용한 폭탄을 백범 김구를 통해 전 한 인물이기도 했다. 제2의 전태일로 불린 박영진 열사 제2의 전태일로 불린 노동자 박 영진이 근무한 ㈜신흥정밀은 독 산역 근처(독산동 1002-1)에 있 었다. 1986년, 신흥정밀 노동자 들의 임금인상투쟁에 전두환 군 사정권은 공권력을 투입하여 진 압하고자 했다. 이때 박영진은 “근로기준법을 지켜라, 살인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