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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국 역사기행 ➊ • 서울, 독립운동과 역사의 현장을 가다 ⑱ 119 공장을 인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는데, 조선제분 영등포공장은 일제강점기인 1937년부터 가동 된 유서 깊은 공장이다. 일제강점기 영등포 일대의 공 장 화장실에는 조선의 독립을 갈 망하며 일제와 친일파를 비난하 는 낙서가 끊이지 않았다. 화장실 낙서 중에는 ‘우리 조선 동포들이 여! 조금 더 자각하자’, ‘들고 일어 나 만세를 부르자!’와 같은 내용도 있었다. 긴장한 일제 당국은 이러 한 화장실 낙서까지도 ‘불온낙서 사건’으로 명명한 채 관련자 색출 에 열을 올렸다. 일제의 「불온낙 서조사표」(1937. 7~1938.8)에 따 르면 조선제분 영등포공장 화장 실에서도 ‘이완용 요리점’이라고 쓴 ‘불온낙서’가 발견되었다. 문래동 영단주택과 당산동 이백채마을 문래동 영단주택(營團住宅) 단 지는 서울시의 도시재생사업으로 ‘문래창작촌’으로 변신한 결과 술 집과 카페 등이 함께 들어서면서 젊은 층이 많이 찾는 복합문화공 간으로 재탄생한 곳이다. 더군다 나 ‘문래창작촌’ 서편의 영단주택 단지는 여전히 옛 모습을 간직하 고 있어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 가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문래동 영단주택단지는 일제강 점기 영등포공업지대에 몰려든 노동자들의 주택난 해소를 위해 설립되었는데, 1941년 설립된 조 선주택영단(朝鮮住宅營團)이 주도 하여 일제 패망 직전까지 건립이 지속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문래동 영단주택단지에서 멀 지 않은 영등포구청 뒤편의 이백 채마을은 옛 모습이 일부만 남아 있는데, 해방 이후 이 마을에 살 았던 소설가 황석영은 『철도원 삼 대』에서 이백채마을을 일제의 조 선주택영단이 주도한 영단주택 의 하나로 묘사했다. 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이백채마을은 조 선주택영단이 설립되기 이전인 1930년대에 영등포에서 개척교 회를 운영하던 조선인 정영환(정 경모의 부친) 장로가 이 일대 가난 ➑ ➑  문래동 영단주택(1940년대)     ➒  이백채마을의 흔적이 남아 있는 건물 ➒ 일본 미쓰이계열의 종연방적 영등포공장 전 경이 담긴 일제강점기 엽서(서울역사박물관  제공) 문래공원에 있는 박정희 흉상. ‘5·16혁명발 상지’로 표기돼 문제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