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page

순국 역사기행 • 서울, 독립운동과 역사의 현장을 가다 ⑮ 119 을 언도받고 옥살이를 하였다. 역 삼리 만세운동은 1919년 3월 28 일 이중인(1891~1921, 역삼동 124)이 이중항을 비롯한 마을 주 민 100여명과 함께 마을 뒷산 위 에 올라 화톳불을 피운 채 횃불을 올리고 진행한 만세운동이었다. 이 일로 이중인은 징역 6개월 형 을 언도받고 옥살이를 하였고, 그 여파로 1921년에 요절하였다. 역삼리 사람 김교헌, 대종교를 이끈 2대 도사교(都司敎) 김교헌(1868~1923)은 일찍이 독립협회, 만민공동회 등에서 활 동하며 애국계몽문동에 참여했 다. 이후 만주로 망명한 김교헌 은 1916년부터는 나철을 계승하 여 대종교 2대 도사교(교주)로 활 동했다. 그는 만주에서 신규식, 신 채호, 안창호 등 39명이 서명하 여 발표한 대한독립선언서(일명 무오독립선언서)에 제일 먼저 서 명한 인물이기도 하다. 북로군정 서를 조직하여 총재에 사종사(四 宗師) 중 한 명인 서일(徐一)을 임 명함으로써 청산리전투의 주력이 되도록 한 것도 김교헌의 대종교 지도부였다. 1923년 12월 25일 길림성 영고탑(寧古塔)에서 서거 했을 당시 동아일보 간도지국장 으로 있던 아들 김정기는 조선총 독 주살 음모사건에 연루되어 청 진감옥에 있었고, 김교헌의 고택 이 있던 언주면(역삼리 55번지)에 는 그의 팔십 노모가 생존해 있었 다고 한다. 서울 동작구에서 동작역사문화연구소 소장을 맡아 지역사를 연구하고 있다. 서울현충원 역사탐방을 비롯하여 독립운동과 민주화운동의 역사를 중심으로 하는 근 현 대 역사탐방을 이끌고 있고, 「오마이뉴스」에 ‘동작 민주올레’를 연재하고 있다. 저서로 『현충원 역사산책』, 『동작구 근현대 역사산책』, 『낭만과 전설의 동작구』, 『동 작 민주올레』 등이 있다. 필자 김학규 서대문형무소에서 만든 수서리 출신 이시종 의 수형자 카드(국사편찬위원회 「일제감시대 상 인물카드」) 문역삼리 만세운동을 주도한 이중인 등의  경성지방법원 판결(1919.6.28, 국가기록원  제공) 김교헌의 별세 소식을 전한 언론보도 기 사 (『조선일보』 1923.1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