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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 2024년 11월 순국 Inside  길 따라 얼 따라 순국 역사기행 에 보내는 활동도 전국의 사찰을 돌며 수행하였다. 애석하게도 봉은사 스님들의 독립운동은 뚜렷한 행적이 확인 되지는 않는다. 1928년에 김상 호, 김법린, 백성욱 등 조선불교 청년회가 주도하여 수송동 각황 사에서 개최한 조선불교승려대회 발기회에 봉은사 대표 4인을 파 견한 일과 이듬해 각황사에서 개 최한 조선불교선교양종승려대회 (1929.1.3)에 3인의 대표를 파견 한 정도가 눈에 띌 뿐이다. 봉은사에는 대웅전 마당으로 올라와 뒤를 돌아보면 보이는 법 왕루 처마 아래의 '禪宗宗刹 大 道場(선종종찰 대도량)'이라고 쓰인 현판이 있다. 이 글씨는 민 족대표 33인 중 한 명인 오세창 (1864~1953)이 1943년에 쓴 것 이다. 강남 지역의 의병운동과 국채보 상운동 율현리(현 율현동) 출신의 배천 봉(1887~?)은 1907년~1908년까 지 김병길 의병부대에서 의병으 로 활약하다 용인 모현에서 체포 되어 유형 3년을 선고받았다. 경 기도 광주는 양주, 용인 등지와 더 불어 의병운동이 활발한 지역이 었음을 감안할 때 현 강남구 지역 사람들도 의병에 다수 참여했을 것으로 보인다. 언주면 · 대왕면 사람들은 또 국 채보상운동에 참여하였다. 조병 성, 이준옥 등 언주면 포일동(현 개포동) 주민 35명은 합 10원 75 전을 납부하였고, 대왕면 율현동 주민 류도혁, 전규성, 이수정 등 15명은 합 5원을 납부하였다. 수서리와 역삼리의 만세운동 1919년의 3 · 1운동이 시작되었 을 때 언주면과 대왕면 사람들은 수서리와 역삼리 등에서 만세운 동을 벌였다. 수서리 만세운동은 수서리 출신의 이시종이 3월 26 일 오후 3시부터 6시까지 송파리 에서 300여 명의 주민과 함께 만 세운동을 벌인 후, 같은 날 저녁 7 시 경 이재순 등 수서리 주민 100 여 명을 조직하여 수서리에 있던 대왕면 면사무소 앞에서 『조선독 립신문』을 낭독하며 벌인 만세운 동이다. 이 일로 이시종과 이재순 은 각각 징역 1년과 징역 8월 형 국채보상운동에 참여한 율현동 사람들(『대한매일신보』 1907.4.28.) 국채보상운동에 참여한 포일동 사람들(『대한매일신보』 1907.4.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