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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국 역사기행 ➊ • 서울, 독립운동과 역사의 현장을 가다 ⑱ 117 장도 포함되어 있었다. 통영 출신 으로 수재들만 다닌다는 경성사 범을 졸업한 방준표(1906~1954) 는 독립운동의 대열에 뛰어들었 는데, 1934년부터 6년 동안 기계 공 노릇을 하면서 조선인쇄주식 회사, 쇼와기린맥주, 용산철도공 장 등에서 노동자를 조직하는 활 동을 펼쳤다. 영등포역 앞에 서려있는 3·1운 동과 반독재민주화운동의 역사 영등포역 앞은 1919년의 3·1운 동 시기 여러 차례 시위가 일어난 곳이다. 영등포역 앞에서는 서울 외곽지역에서 동시다발로 만세운 동이 일어났던 3월 23일에도 당 산리, 양평리, 양진리, 인근의 노 량진과 함께 만세운동이 일어났 다. 조선총독부 경무총감부의 보 고서에 따르면 영등포 약 300명, 당산리 약 150명, 양평리 약 200 명, 양진리 약 300명의 군중이 같 은 날 같은 시각(3월 23일 오후 8 시 30분 전후)에 만세운동을 벌였 다. 영등포에서는 5일 후인 3월 28일에도 3백여 명이 참여하여 만세운동을 벌였고, 4월 3일에는 약 1천 명이 참여한 대규모 만세 운동을 벌였다. 이보다 이틀 앞선 4월 1일에는 이미 철시(撤市) 중 인 상인들을 상대로 시흥군수와 경찰서장이 직접 나서 압박을 가 해 문을 열게 했다는 일제의 보고 도 있는 것으로 보아 4월 1일 이 전부터 영등포 일대의 상인들은 철시운동을 벌이고 있었던 것으 로 보인다. 영등포역 앞은 ‘서울의 봄’이 절 정을 향해 치닫고 있던 1980년 5 월 14일에는 서울대·숭실대·중앙 대생 1만여 명이 원효대교를 넘 어 서울역 광장까지 행진할 때 중 간 집결지 역할을 맡았고, 1987 년의 6월 민주항쟁 당시에는 500 여 명의 노동자와 대학생이 ‘민주 헌법쟁취 노동자대회’(6월 24일) 를 개최하고 경찰에 맞서 격렬한 ➊ ➊  일제 강점기 관광지도 「대경성부 대관」(1936)에 실린 영등포 일대의 모습  ➋  ‘쇼와기린맥주’ 시절부터 사용된 맥주제조용 담금솥(영등포공원 소재, 이하 현장 사진은  필자 촬영) ➋ ➌ ➌  ‘대한독립만세운동 시위 터’(3.23 양평리 만세운동 기념비) ➍  영등포역 앞 바닥에 새겨진 ‘대한독립만세운동 시위 터’ 바닥돌. 영등포에서는 3월  23일 만이 아니라 3월 28일과 4월 3일에도 만세운동이 있었고, 시장 상인들의 철시운 동도 있었지만, 바닥돌은 이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 점이 아쉽다. 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