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7page
순국 역사기행 • 서울, 독립운동과 역사의 현장을 가다 ⑮ 117 년)·이종량(2학년) 등 재학생 2명 과 박동훈(당시 서울대) · 최정규(당 시 연세대) 등 졸업생 2명이 민주 의 제단에 목숨을 바치기도 했다. 경기고 학생들은 한일회담 반대투 쟁 당시인 1964년 3월 26일 「이 것이 민족적 민주주의드냐?」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앞세우고 시위에 참여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경기고가 화동(현 정독도서관) 에서 삼성동으로 이전한 것은 1976년의 일이다. 현 경기고 교 정에는 경성고보 학생들의 독립 운동과 민주화운동을 소개하고 있는 ‘100주년기념관’과 화동에 서 옮겨 온 ‘4 · 19민주혁명학생희 생자위령비’가 있다. 불교계의 항일운동과 봉은사 불교계를 대표하는 독립운동가 는 민족대표 33인의 한용운과 백 용성, 불교 청년들을 연결하는 고 리 역할을 했던 김법린, 진관사의 백초월, ‘붉은 스님’ 운암 김성숙 등이 있다. 3 · 1운동을 기점으로 불교계의 독립운동은 조직적·집단적 성격 을 띠기 시작했다. 그 주체는 ‘불 교청년’이었다. 이들은 범어사, 해 인사, 표충사, 봉선사 등 전국의 사찰을 매개로 3 · 1운동을 실행하 고 전국적으로 확산시키는 역할 을 맡았고, 독립운동자금을 마련 하여 임시정부와 만주의 독립군 ➐ 4 · 19혁명 당시 사망한 고완기 · 이종량(재학생), 박동훈 · 최정규(졸업생)의 의로운 죽음을 기리는 민주혁명학생위령비(경기고 교정) ➑ 경기고 100주년기념관 안 역사관 전시물 ➐ ➑ ➒ 100주년기념관에 새겨져 있는 경기고출신 독립운동가 명단(박쾌인·김백평·박노영· 심훈 등 3·1운동 참여자들은 퇴학당했다는 이유로 명단에 없다) ➓ 봉원사의 ‘禪宗寺刹 大道場(선종사찰 대도량)’ 현판(오세창 글씨) ➒ 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