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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 사랑방 • 가을로 들어서는 9월의 절기, 백로와 추분 117 씩 셋으로 나누어 특징을 말했는 데, 초후(初候)에는 기러기가 날아 오고, 중후(中侯)에는 제비가 강남 으로 돌아가며, 말후(末候)에는 뭇 새들이 먹이를 저장한다고 했다. “꼬리가 긴 남은 더위도 차츰 물러가고 산양에는 제법 추색(秋 色, 가을빛)이 깃들고 높아진 하늘 은 한없이 푸르기만 하다. 농가 초 가집 지붕 위에는 빨간 고추가 군 데군데 널려 있어 추색을 더욱 짙 게 해주고 있는가 하면 볏논에서 는 어느새 ‘훠이 훠이’ 새를 날리 는 소리가 한창이다.” 위는 〈秋色은 「고추」빛과 더불 어 「白露」를 맞으니 殘暑도 멀어 가>란 제목의 《동아일보》 1959년 9월 8일 치 기사 일부로 ‘백로(白 露)’ 즈음의 풍경을 잘 나타내고 있다. 백로 때가 되면 밤에 기온이 이슬점 이하로 내려가 풀잎이나 물체에 이슬이 맺힌다. 백로부터 는 그야말로 가을 기운이 물씬 묻 어나는 때다. 포도지정이 생각나는 절기 ‘백로’ 이때쯤 보내는 옛 편지 첫머리 를 보면 “포도순절(葡萄旬節)에 기 체만강하시고…….”라는 구절을 잘 썼는데, 포도가 익기 시작하여 수확하는 백로에서 한가위까지를 포도가 제철이라는 뜻으로 ‘포도 순절’이라 한다. 포도는 예부터 다 산(多産)의 상징으로 생각해서 맨 처음 따는 포도는 사당에 고사를 지낸 다음 그 집 맏며느리가 통째 로 먹었다. 따라서 처녀가 포도를 먹으면 망측하다고 호통을 듣기 도 했다. 또 부모에게 배은망덕한 행위 를 했을 때 <포도지정(葡萄之情)> 을 잊었다고 하는데, 이 “포도의 정”이란 어릴 때 어머니가 포도를 한 알, 한 알 입에 넣어 껍데기와 씨를 가려낸 다음 어린 자식에게 입으로 먹여주던 그 정을 일컫 는 다. 백로는 어머니의 자식 사랑이 물씬 느껴지는 ‘포도지정’이 그리 워지는 계절이다. 특히 백로 무렵에는 장마가 걷 힌 뒤여서 맑은 날씨가 이어지지 만, 남쪽에서 불어오는 태풍으로 곡식이 피해를 보는 경우도 있다. 볏논의 나락은 늦어도 백로가 되 기 전에 여물고 패어야 하는데, 서 리가 내리면 찬바람이 불어 벼의 수확량이 줄어들기도 한다. 제주 도 속담에 “백로전미발(白露前未 發)”이라고 해서 이때까지 패지 못한 벼는 더는 크지 못한다는 말 이 전해지기도 했다. 늦여름에서 초가을 사이 내리쬐는 하루 땡볕 포도순절이 시작되는 ‘백로’, 어머니의 ‘포도지정’이 그리운 날(그림 이무성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