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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 2025년 1월 순국 Inside  길 따라 얼 따라 순국 역사기행 ① 행위자 김창룡(金昌龍)이 출근길 에 암살당하는 사건이 발생한 곳 이다. 현 용산경찰서 자리에 자혜 병원이 있던 시절이다. 이승만 당 시 대통령의 총애를 받던 특무대 장 김창룡이 전횡을 일삼자 내부 의 갈등이 증폭되면서 발생한 사 건이었다. 사건은 처음에는 특무 대 근무 경력의 허태영 대령이 주 도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당시 육 군참모총장 정일권과 강문봉 중 장 등이 그 배후에 있었다. 이승 만을 이을 후계구도 개입에 위기 의식을 느낀 이기붕 당시 국회의 장이 배후의 정점에 있었다는 증 언도 있다. 사건 직후 잠옷에 외 투만 걸친 채 옥인동 특무부대장 실로 달려간 이 승만은 김창룡 의 시신을 보면 서 “김장군은 나를 대신해서 죽었다”고 말하 면서 애통해했 다고 한다. 일 제 강 점 기 만주(중국 동북 지방)에서 관동 군 헌병 오장 (伍長)으로 있으 면서 독립운동가를 색출하는 데 앞장섰던 김창룡은 해방 이후에 는 조선경비사관학교 3기로 졸 업하여 군인이 된 후 특무대장을 맡아 이승만에 반대하는 인물들 을 상대로 수많은 사건을 조작하 여 탄압하는 등 이승만 정권의 철 저한 수호대 역할을 맡았던 자다. 백범 암살의 배후 중 하나로 지목 되기도 했던 김창룡이 백범 김구 의 묘와 멀지 않은 곳에서 암살당 한 것도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까 싶다. 서울대생 박종철이 고문으로 사 망한 곳, 옛 남영동대공분실 남영동대공분실은 1987년 6월 민주항쟁 전야에 서울대생 박종 철이 물고문을 당하다 사망한 곳 으로 군사독재 시절 악명을 떨쳤 던 곳이다. 1976년 내무부 산하 치안본부(현 경찰청)가 세운 옛 남 영동대공분실 건물은 원래는 5층 이었는데, 1983년에 7층으로 증 축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좁은 창문구조를 가지고 있는 5층에서 주로 물고문과 전기고문이 일상 적으로 자행되었다. 이 건물을 지은 김수근은 5 · 16 군사쿠데타의 주역인 김종필과 각별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올림 픽주경기장, 자유센터와 워커힐 호텔, 여의도종합개발계획 같은 굵직한 건물이나 사업을 설계한 대한민국의 대표적 건축가이다. 5층의 창문구조나 나선형 계단 등 몇 가지만 봐도 김수근이 의뢰 자의 의도를 정확히 이해한 가운 데 요구에 맞춰 충실하게 지은 건 물이라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다. 건축가 김수근은 ‘특정분야에 아 무리 뛰어난 전문성을 가지고 있 다고 할지라도 민주주의와 인권 에 대한 기본 소양이 부족하면 한 낱 독재자의 권력유지를 위한 수 단으로 이용될 수 있을 뿐’이라는 사실을 실감케 해 준다. 김창룡암살사건 현장지도(『조선일보』, 1956.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