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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 2024년 11월 순국 Inside 길 따라 얼 따라 순국 역사기행 월에는 미국의원단 방문에 즈음 하여 일제기관의 파괴와 요인 암 살을 꾀한 김상옥의 암살단 활동 을 지원하는 활동도 벌였다. 이 때 이재인은 ‘암살단 취지문’, ‘경 고문’, ‘포고문’ 등 4,000여 매를 자신의 집(광주군 언주면 청담리 291)에서 인쇄하여 인근 이임수 (당시 27세, 농민)의 집에 숨겨놓 고 배포하던 중 체포되어 1년 형 을 언도받았다. 청담리(273번지)에 살던 이정 수(1920~1987)는 한국광복군에 서 활약한 인물이다. 그는 1944 년 10월 공작원 윤창호의 안내로 푸양(埠陽)에 도착한 후 한국광복 군에 입대하여 한광반 단기 특별 교육을 받은 후 제3지대(지대장 김학규)에 소속되어 북평(北平) 지 구와 태원(太原) 석가장(石家莊) 등지에서 초모공작을 벌였다. 그 는 8 · 15해방을 맞아서는 중국의 일제 점령 지역에 거주하던 한국 동포들을 보호하는 일과 수감 중 인 동지 구출 등을 위해 조직된 천진(天津)지구 특파단(단장 신흥 균) 대원으로 파견되어 활동한 후 귀국했다. 현재 독립기념관에 전 시되어 있는 ‘한국광복군 서명 태 극기’는 1945년 2월 이정수가 같 은 부대의 문수열에게 선물한 태 극기이다. 1946년 1월, 문수열이 타 부서로 전근 갈 때 이 태극기에 70여 명의 대원이 서명하여 건넸 다고 한다. 독립운동과 민주화운동에 헌신 한 경기고 학생들 경기고는 독립운동과 민주화운 동의 역사에서 뚜렷한 족적을 남 긴 학교이다. 1919년 3 · 1운동 당 시에는 학생대표 박쾌인, 김백평, 박노영을 중심으로 만세운동에 참가했고, 1920년에는 일제의 식 민지 교육정책과 민족차별에 대 항하여 동맹휴학을 결행하기도 했다. 이후 6 · 10만세운동, 1927 년의 조선어탄압정책에 맞선 동 맹휴학, 1929-30년의 광주학생 독립운동 등에 재학생들이 헌신 적으로 참여했다. 독립운동의 역 사에서 뚜렷한 족적을 남긴 심 훈 · 박열 · 이범석 · 박헌영 등이 경 성고등보통학교(약칭 경성고보, 경기고의 전신) 출신이다. 1960년의 4 · 19혁명을 비롯하 여 6 · 3항쟁(굴욕적 한일회담 반 대운동), 반유신 투쟁에도 경기고 학생들은 그 선두에서 활약했다. 4 · 19혁명 과정에서는 고완기(2학 ➎ 이재인과 김기한 등 대한독립단 관련자들이 일제 경찰에 체포되어 재판을 받고 있는 장면(『동아일보』 1921,9,21) ➏ 한국광복군 서명 태극기(독립기념관 제공) ➏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