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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 2024년 8월 순국 Focus   역사의 시선으로 3월의 전설(105회) 체하고 집에 돌아와 있음으로 이러한 자 중에 범인이  있는 것을 체포하기에도 곤란이 여간 아니하며, 도저 히 수원경찰의 힘만 가지고는 진압할 방칙이 없음으 로 경기도 경무부에서는 하세베[長谷部] 대위를 지휘 관으로 4월 2일에 일대의 검거대를 파견하여 각 촌락 을 일시에 밤에 수색을 하여 수백 호를 검거하여 수 백 명의 혐의자를 검거하고 또 9일로부터는 진촌 특 무조장의 지휘로 제2반의 검거대를 파견하였는데 두  대에서 검거한 호수가 삼천 호에 달하며 검거한 자가  몇백 명이나 되는데 지금 수원과 안성 경찰서에서 엄 중히 취조를 하여 다만 만세만 부른 자는 설유를 하 여 방송(풀어줌)을 하고 수모자는 기소를 하는 중인 데 헌병대와 경찰서에서 검거를 밤에만 하는 고로 폭 민들의 공구는 여간이 아니라 문을 박차고 창을  넘어 서 도망을 하느라고 람푸(등잔)를 깨뜨리고 넘어뜨려 서 불을 내기도 하며 달아나기에 정신이 없는 폭민은  불을 잡는데 다 무엇이냐 하고 집에 불이 일어난 것 을 내버려두고 달아났음으로 인접한 집도 수삼하나  연소된 곳도 있으며”(『매일신보』, 1919.4.17.) 위 기사는 일본군의 방화(放火)를 주민들이 피신하 다 불이 난 실화(失火)로 보도하며 진실을 가리고 있 다. 일제 군경의 만행 진실은 외국 선교사들의 보고 서에 정확하게 포착되었다. 다음은 장안 우정면 일대 에서 그들이 목격한 고발 내용의 일부이다. 4월 6일의 범죄의 진상 : 모두가 잠든 시간 동이 트 기 전, 몇몇 군인들이 마을로 들어와 집집마다 돌아 다니며 빨리 불에 타 온 집을 불바다로 만드는 초가 지붕에 불을 놓고 다녔다. 집밖으로 도망 나온 사람 들은 마을 진체가 불에 타는 것을 보았고, 그중 일부 는 불을 끄려고 했으나 곧 군인들이 쏜 총에 맞거나  길에 찔리고 얻어맞으며 제지당했다. 그들은 그저 마 을이 모두 잿더미로 변하는 광경을 바라볼 수밖에 없 었다. 군인들은 그런 사악한 일을 저지르고는 사람들 을 버려두고 가버렸다. 이로 인해 한 명이 죽고, 많은  사람들이 심하게 상처를 입었다고 한다. 나는 바람 때문에 불길이 번진 것은 아닌지 물었 다. 사람들이 이에 대답했다. “마을의 몇몇 장소에서  동시에 불길이 솟고 있었다. 군인들은 성냥들을 가 지고 와서 많은 초가지붕에 불을 냈어요.” 마을의 집 들을 확인해 보자 불이 모든 집에 퍼지는 것은 불가 능하다는 것이 곧 드러났다. 어떤 집과 집 사이의 거 우정면 화수리 경찰관주재소 습격 등을 주도하여 징역 3년형을 선 고받은 김덕삼, 장안면 수촌리 만세시위자 김응오의 감옥 수감시  모습(국사편찬위원회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3·1운동 참사 현장의  스코필드 박사와 일본  순사. 화성시독립운동 기념관 앞에 있는 스코 필드 박사 동상 뒤 벽 면에는 당시 참상 소식 을 듣고 달려온 스코필 드 박사와 현장 출입을  통제하고 있는 일본 순 사의 모습이 그려져 있 다(이윤옥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