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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 2024년 4월 순국 Inside  길 따라 얼 따라 순국 역사기행 대중 집 폭발물 사건’은 미제사건 이 되었다. 경성감옥(마포형무소)터 – 현 서 울서부지검 자리 경성감옥은 1912년에 세워졌 다. 서대문감옥과 더불어 독립운 동가가 수난을 당한 서울의 대표 적인 감옥이다. 주로 남성 장기수 들이 이곳에서 수감되어 있었다. 3·1운동을 이끌었던 민족대표 48 인 중 이필주·박동완 등 19명도 경성감옥에서 옥살이를 하다 석 방되었다. 만주벌 호랑이로 불린 일송 김 동삼 선생(1878-1937)이 징역 10년형을 선고받고 수감 중 1937 년에 옥사한 곳도 경성감옥이었 다. 김동삼은 1931년 일제의 만 주 침략 직후 만주에서 체포되었 는데, 그의 시신은 한용운이 수습 한 후 화장하여 한강에 뿌렸다. 1961년 5·16군사쿠데타에 항 거한 혐의로 체포된 이한림 중장 (제1군단장), 강영훈 중장(육사 교 장), 김웅수 소장(제6군단장), 정 강 준장(6군단 제8사단장), 이상 국 준장(30사단장) 등이 수감되어 있던 곳도 경성감옥에서 이름이 바뀐 마포형무소였다. 김수현 본적지 터 공덕리(175-221) 출신의 김수 현(1898-1985)은 일찍이 중국으 로 망명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 산하 한국혁명여성동맹에서 활동 한 인물이다. 현재 김수현의 본적 지에는 대단위 아파트단지가 들 어서 있는데, 김수현의 삶을 들여 다볼 수 있는 그 어떠한 흔적도 발 견할 수 없다. 독립운동가 이광 (1879-1966)과 결혼한 김수현은 3남매(국영, 윤장, 윤철) 역시 모 두 독립운동가로 키웠다. 그런 김수현이 1985년 상도동 에서 서거할 당시 언론에 나온 부 음에는 “이광씨(독립유공자·전충 북도지사) 상배”라고만 되어 있을 뿐, 고인이 된 김수현의 이름석자 조차 없었다. 우리 사회가 얼마나 남성 중심 사회인지 극명하게 보 여주는 사례의 하나로 기록될 일 이다. 이 지역 출신 중에는 의열투쟁 에도 나섰던 사회주의계 독립운 동가 김한(1887-1938)도 있었고, 신공덕리의 김익주(1873-1955) 와 공덕리의 송헌주(1880-1965) 와 같이 일찍이 미주지역으로 이 주하여 살면서 독립운동에 헌신 ➊ ➊  마포형무소의 옛 모습      ➋  경성감옥터 표석(‘독립운동 유적지’로 표기. 이하 현장 사진은 김학규 촬영)  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