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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서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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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병, 나라를 지키다. 태인의병, 선봉에 서다 1905년 11월 을사조약이 강제로 체결되자, 최익현은 즉시 상소를 올려 조약 폐기와 5적 처단을 요구했다. 전국에서 항거와 자결 순국 소식이 이어졌고, 최익현도 궐문 앞에 나아가 죽는 것을 의리로 삼아 상경하려 했으나 일제의 감시로 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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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6년 02월 21일, 창의를 위하여 가솔들과 작별하고 호남으로 출발했다. 문인 최제학을 보내 전라도 태인의 임병찬에거 거의의 뜻을 알리고, 청국에도 구원을 청했다. 윤4월 13일 태인 무성서원에서 격문을 발표하고 의병을 봉기, 태인 관아에 진입해 명륜당을 지휘소로 삼고 의병을 모집하는 한편, 일본 정부에 죄악 16가지를 성토하는 장서 '기일본정부寄日本政府'를 보냈다. 정읍, 순창 등지에서 일주일 만에 의병 900여 명이 집결했고, 사찰에서 군사 훈련을 했다. 의병은 태인에서 출발해 정읍 내장사, 순창 구암사, 곡성 등지로 이동하며 격문을 전하였고, 다시 순창에 주둔하였다. 그러나, 광주관찰사가 고종의 해산 칙유를 전달하며 전주관찰사와 순창군수가 군사를 이끌고 공격해오자 최익현은 동족과의 싸움을 피하고자 의병을 해산시킨 후 '12의사'와 함께 관군에 체포되어 서울로 압송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