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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의 전설(111회) • 황해도 안악군의 독립만세 시위운동(2) 115 로 앉아 있는 그녀를 조롱했다. 그 방에는 많은 남자 들이 있었다. 서른두 살이며 두 명의 자식을 가지고 있는 미망인 인 표학선(Pyo Hak Syun)도 시위에 참여하였고, 경찰 에 연행되면서 팔이 골절될 정도로 뒤틀렸고, 경찰서 에서는 경찰들에게 얼굴을 맞고 발로 머리를 차이는 등의 구타를 당했으며 경찰들은 그녀의 옷도 벗겼다. 이효성(Yi Hyo Syung)은 신효범(Sin Hyo Pum)의 아내이다. 신효범은 Syen Chun Boys Academy[선 천 남학교]에서 한동안 선생을 하였다. 스물여덟 살 인 그녀는 Yun Mot Gol Girls Academy[연못골 여학 교-경성 정신여학교로 보임: 필자]의 졸업생이며 매 우 유능한 지식인이었다. 그녀는 네 살 난 어린아이가 있으며 두세 달 전에 두 번째 임신을 한 상태였는데, 경찰에게 체포되었다. 경찰서에서 경찰들은 그녀의 얼굴과 머리를 수없이 때리고 강제로 옷을 벗겼으며 몽둥이로 매질을 하고 나체로 많은 남자들 앞에 서있 게 하고, 몸을 보호하려는 그녀의 팔을 뒤로 묶어버렸 다. 구타는 그녀가 고통을 의식하지 못하는 상태가 될 때까지 계속됐다. 저녁 9시쯤 끌려온 여성 5명 중 3명 을 풀어주고, 2명(표학선, 이효성)은 감금했다. 여자들이 받은 처우가 알려져 다음날(3월 30일) 아 침, 500여 명의 군중이 집결하였고, 그들 중 몇몇은 경찰서를 공격하여 복수하고자 했지만, 연장자 한 씨 가 폭력의 사용, 또는 어떠한 종류의 불법적인 행위 에 대해 경고했다. 결국 두 명의 대표를 보내 항의하 기로 결정했다. 두 사람은 비기독교인이며 한 사람은 일본어를 잘했다. 두 사람이 경찰서에 들어간 동안 군중은 밖에서 기다렸다. 두 사람은 여자들의 옷을 벗긴 것은 불법적인 것이라고 항의했고, 서장이 일본 법에서는 그것이 허락된다고 했다. 왜 나이든 여자 가 아닌 젊은 여자만 옷을 벗겼는지, 왜 오직 남자가 아닌 여자들만 옷이 벗겨졌는지 묻자 서장은 대답할 수 없었다. 상당한 대화가 이어지고, 군중들이 들뜨 기 시작하자 서장은 마침내 항복하고 4명의 죄수만 남기고 모두 풀어주는 데 합의했다. 풀려난 표학선과 이효성이 제대로 걷지도 못하고 실려가는 것을 본 군 중은 경찰서를 공격해야 한다고 했지만, 한씨가 설득 하여 군중은 해산했다. [재한선교사 보고자료(The Korean Situation), The Demonstration at Tong Chang, 1919.3.29] 4월 4일 황해도장관 신응희(申應熙)는 동창리 시위 대의 자제는 무시하고 오히려 ‘악마화’하여 총독부에 보고했다 3월 30일 오전 11시 30분경 [안악군] 소재 인민 약 400명이 동창헌병주재소에 몰려와 구인 중의 주모 자 이하를 탈취하려고 기도하였으므로 재향군인의 응원을 얻어 극력 진무에 종사했다.… 형세가 매우 불온하다. (「관내 소요사건 상황보고」, 1919.4.4.)(계 속) 서울대학교 국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3 ٠ 1운동의 지방시위에 관 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수석연구원 을 역임했고, 현재 3 ٠ 1운동기념사업회 회장을 맡고 있다. 3 ٠ 1운동을 중심으로 우리 역사를 새롭게 정리하는 일에 관심을 갖고 연구와 집필, 강연을 하고 있다. 필자 이정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