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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국 역사기행 • 서울, 독립운동과 역사의 현장을 가다 ⑯ 115 의 김용주(1912 –1985, 방배동 593-93)와 김중호(1916-1992, 방배동 327-37), 박기성(1907- 1991, 방배동 981-50), 피문성 (1917-1989, 방배동 1008-2) 등 이 살았던 곳이다. 황해도 신천 출신의 김용주와 충북 진천 출신의 박기성은 한국 청년전지공작대(韓國靑年戰地工 作隊)를 거쳐 한국광복군 제5지 대(지대장 나월환)에 편입되었던 아나키즘 계열의 독립운동가였 다. 제5지대는 대원 사이의 갈등 이 나월환 지대장 암살 사건으로 비화되면서 부대가 해체되는 아 픈 역사를 가지고 있다. 제5지대 가 해산된 이후 김용주는 제2지 대(지대장 이범석) 소속으로 미군 전략정보처(OSS)와의 합동 훈련 에 참여하여 정보·파괴반을 수료 한 후 국내정진대의 함경도반 반 장에 임명되었고, 박기성은 총사 령부(사령관 지청천) 서무과에서 활동하였다. 평북 철산 출신의 김 중호는 중국 중앙육군군관학교 의 한국광복군훈련반(한광반)을 거쳐 제2지대에 편입된 후 미군 전략정보처(OSS)와의 합동 훈련 에 참여하여 무전반을 졸업한 후 국내정진대의 평안도반 반원으 로 국내진입을 준비하던 중 해방 을 맞았다. 평양 출신의 피문성은 1942년부터 중국 중앙군 제3전 구 제2집단군 사령부에 근무하면 서 대일전에 참전하였고, 1945년 에는 후이저우(徽州)에 있던 미군 제5공군의 제3전구 파견대 주환 (駐晥)분대에 배속되어 미군 항공 부대의 난징(南京)이나 상하이(上 海) 등지의 일본 군사 시설 폭격 을 지원하는 업무를 수행하기도 했다. 방배동에 들어설 뻔한 삼일공원 과 독립운동가 최은희 독립운동의 역사를 기리자는 취지의 삼일공원 설립에 대한 논 의는 1967년부터 시작되었다. 그 중심에는 여성독립운동가이자 우 리나라 최초의 민간신문 여기자 였던 최은희(1904-1984)가 있었 다. 최은희는 1967년 4월 15일자 <동아일보>에 “아직도 독립공원 이 없는 게 좀 부끄럽지 않는가!” 라면서 독립공원 설립의 필요성 을 설파하는 글을 실었다. 처음에 는 사당동(산 24-1)에 있던 3만 여 평 규모의 국유지가 삼일공원 부지로 지정되었다. 하지만 예산 이 배정되지 않았고, 공원부지에 청계천·양동·이촌동 등지의 철거 민마저 몰려오면서 삼일공원 조 성 사업은 난관에 부딪쳤다. 이때 (1972년) 최은희의 로비를 받은 연탄가스에 중독되어 서거한 김용주 지사의 안타까운 소식을 전하고 있는 『조선일보』 기사(1985.12.13) 한국광복군 출신 박기성 지사의 서거 소식을 전하고 있는 『동아일보 』 기사(199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