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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국 역사기행 • 역경 극복 중앙아시아 고려인들 115 세력들이 중국 관내(關內)지역으 로 모여들었다. 연해주 지역의 한 인들은 1937년 중앙아시아로 갑 자기 강제이주 당했다. 다른지역 도 마찬가지였지만, 특히 연해주 지역은 러시아의 정세 변화에 따 라 많은 우여곡절을 겪은 곳이었 다. 1922년 말 시베리아 내전이 종결되고 소비에트 체제를 확립 해 가는 과정에서 연해주 한인사 회 역시 급격히 변질되어 갔다. 스 탈린 정권은 한인의 전통 마을을 집단농장으로 재편해갔다. 한인 들에 대한 체포, 감금, 처형 등 대 탄압도 거세졌다. 1931년 일본의 만주(중국 동북 지방) 침공, 1937년 중일전쟁 등 일제의 대륙침략이 본격화되자 연해주 지역의 안보를 우려한 스 탈린 정권은 80여년 가까이 이 지 역을 개척한 한인들을 1937년 무 자비하게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 시켰다. 스탈린 정권은 연해주지 역 한인들이 일본과 연계될 것이 라는 근거없는 우려와 함께 한인 들을 이용하여 중앙아시아 지역 을 개발하려는 의도도 가지고 있 었다. 이러한 이유로 소련 인민위 원회 및 소련공산당 중앙위원회 결정 No.1428-326 cc(1937년 8 월 21일)에 따라 연해주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한인들을 카자흐 스탄과 우즈베키스탄 등 중앙아 시아로 강제로 이주시켰다. 1937 년 9월 17일부터 두 달 동안 연해 주지역 한인 집단거주지에서 한 국인 17만여 명을 중앙아시아의 황무지로 강제 이주시킨 것이다. 한국인들을 화물열차에 짐짝처럼 실어 강제 이주시키는 과정에서 1만 명이 넘는 한국인이 숨 진 것 으로 전해진다. 일대 비극이 아닐 수 없었다. 당시 연해주 지역에서 활동하 던 홍범도·계봉우·황운정·최봉설 등 수많은 독립운동 지도자들도 강제이주 당하였다. 우리는 ‘고려 인’ 그분들의 삶과 애환도 우리 역 사의 한부분임을 결코 잊지 말아 야 할 것이다. 건국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했다. 한국근대사를 전 공하여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책임 연구위원으로 재직하였다. 현재 선인역사문화연 구소 연구소장, (사)백산안희제선생기념사업회 백 산학술원장, 백석대학교 유관순연구소 편집위원 장 등을 맡아 활동하고 있다. 필자 이동언 계봉우 거주지 한국어 현판식 연해주지역 한국인 강제이주 행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