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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스런 우리 것들 • 중국 조선족 장례문화 ② 115 제자매(2남 3녀), 사돈 6명, 조카 4명, 외손자, 그 외 친척 3명, 촬영 협회, 회사, 이웃, 연변일보사 등 참석한 문상객들이 그룹을 지어 헌작 3배 하였다. 헌작을 마치면 맏사위가 고인의 약력을 소개한 후 헌작하고 모두 3배 하였다. 이 것을 하직 인사라고 한다. 제사가 끝나면 불을 피우고 떡을 굽고, 리 본, 꽃 등을 모두 태운다. 문상객들과 가족은 집으로 돌 아가고 오후 1시 10분 경 셋째 사 위가 유골함을 모시고 납골당인 연변혁명간부 골회당으로 향했 다. 사무실에서 납골등록증을 받 고 바로 골회당에 안치하였다. 골 회당의 봉안단은 알루미늄으로 만들었다. 이곳에서는 특별한 의 식을 하지 않고, 신고할 때 정해진 위치에 유골함을 안치하는 것으 로 마무리한다. 고인은 공무원으로 정년퇴직했 으므로 열사능원에 안치될 수 있 었다. 골회당 사용료는 1년에 120 원, 사용 기간은 제한이 없다. 조 선족들은 땅값이 비싸기도 하고, 언젠가는 떠나야 하는 곳이라고 생각하여 묘지를 잘 만들지 않는 다. 추석과 기일(忌日)에 3년간 제 사를 지낸다고 한다. 조선족 장례와 묘지 관리의 특징 앞 호에서 본 푸순(撫順)의 조 선족들이 화장한 유골을 훈허(渾 河)에 뿌리는 이유는 유골이라도 강을 따라 흘러 서해(황해)로 흘 러 고국에 가기를 희망한다는 슬 픈 사연이다. 그러나 강의 오염 을 이유로 강의 산골(散骨)을 금 지하는 당국의 정책에 따라 산골 장소가 산으로 바뀌고 있었다. 조선족 중에는 산소를 조성하 기도 하는데, 법령에 따라 시신 이 아닌 화장한 유골을 매장한 묘소이다. 혹은 화장 유골을 1년 간 안치소에 안치했다가 기일이 나 청명(淸明)에 유골을 매장한 산소를 조성한다. 산소가 있으면 매년 청명과 추석이면 산소에서 제사를 지낸다고 한다. 기일에는 집에서 제사를 지내고, 설날에는 0시(자정)에 제사를 올린다. 제사 를 지낼 때는 지방(紙榜) 대신 영 정을 모시고 지낸다. 제수(祭需) 역시 한국에 비해 그렇게 성찬을 차리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중국 조선족들이 산골을 하는 이유는 한 자리에 오래 정착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조선 족들은 더 살기 좋은 곳이 있으 면, 현재 살고 있는 곳에 미련을 두지 않고 떠날 준비가 되어 있 기 때문이다. 이는 조선족들이 중국이라는 타국에서 소수민족 으로 살면서 체득한 깨달음으로 보인다. 필자가 만난 조선족의 유명 인사와 지도자들의 자녀들 은 대부분 고향이나 중국을 떠나 서 살고 있다. 그들은 부모를 모 시지 않고 떨어져 사는 것에 대 해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 부모 역시 탓하지 않는다. 이는 이민 동포들의 공통된 특징이 아닌가 싶다. * 본고는 공동연구자인 강위원 교수의 저서 『조선족의 문화를 찾아서』(역사공간, 2008) 게재 초고 내용을 재정리한 것임(사진 제공 강위원). 고려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했다(문학박사). 국립민 속박물관, 대한민국역사박물관 학예연구관과 과 장 등을 지냈으며, 현재는 을지대학교 장례지도학 과 교수, (사)규암독립사상연구소 부소장, 서울특 별시 동산분과 문화재위원이다. 논저로 『코로나 시대, 다시 집을 생각하다』(2021,공저) ; 『대한독 립! 그날을 위한 봉오동전투』(2020) ; 『한국의 상 례문화』(민속원, 2012) ; 「북간도 명동학교 막새 기와의 꽃문양에 나타난 민족의식」, 『한국독립운 동사연구』 48(2014) 등 다수가 있다. 필자 김시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