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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 2025년 1월 순국 Inside 길 따라 얼 따라 순국 역사기행 ① 서 서거한 이동녕(1869~1940)· 차리석(1881~1945)과 대한민국 정부가 정식으로 수립된 직후 서 거한 조성환(1875~1948) 등 임 시정부 요인이 안장되어 있다. 이동녕과 차리석의 유해는 김구 의 아들 김신이 중국에서 모셔와 1948년 9월 22일 효창공원에 안 장했다. 이동녕은 임시의정원 의 장과 초대 내무총장, 초대 주석을 지낸 인물이거니와 차리석은 임 시의정원 부의장과 국무위원회 비서장을 지냈다. 조성환은 대한 제국의 군인(참위) 출신으로 북로 군정서 군사부장, 임시정부 군무 부장 등을 지낸 인물이다. 백범 김구의 묘는 서북청년회 출신 포병장교 안두희의 흉탄에 서거한 직후인 1949년 7월 5일에 효창공원에 조성되었다. 안두희 가 죽을 때까지 진실을 말하지 않 아 그 배후가 정확히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당시 포병사령관 장은 산과 육군정보국 방첩대장 김창 룡, 육군 총참모장 채병덕, 헌병부 사령관 전봉덕, 국방부장관 신성 모 등이 개입한 것으로 알려져 있 다. 이승만이 지령을 내렸다는 직 접적인 증거는 확인되지 않았지 만, 이승만을 배후로 지목하는 목 소리는 당시부터 끊이지 않았다. 백범 김구의 묘가 효창공원에 조성되어 있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던 이승만은 1956년부터 효 창공원에 운동장 건립을 추진했 고, 마침내 제2회 아시아축구대 회 유치를 구실로 1959년 2월부 터 묘소 바로 앞에 효창운동장 건 립을 시작했다. 다행히 독립 투사 심산 김창숙을 중심으로 결성한 ‘효창공원선열묘소보존회’의 활 동과 각계의 여론 환기에 힘입어 묘소 이전은 막아낼 수 있었다. 백 범 김구의 묘와 삼의사 묘 등을 경 기도 고양의 서오릉(西五陵) 부근 으로 이전하려는 시도는 5 · 16 군 사쿠데타 직후에도 있었지만, 유 족과 사회 각층의 반대로 역시 막 아낼 수 있었다. 백범김구기념관은 백범 김구 의 삶과 사상을 널리 알리기 위해 2002년 10월 22일에 개관했다. 상설전시관과 기획전시관을 갖춘 백범김구기념관은 규모와 의미를 갖춘 실내행사도 자주 개최되는 대표적인 장소이기도 하다. ➍ ➍ 백범 김구선생 묘비(대한민국 임시정부주석백범김구지묘) ➎ 백범 김구선생 하관식을 위해 효창공원에 도착한 장례 행렬(1949.7.5) ➏ 김구선생 하관식 장면(1949.7.5, 효창공원) ➎ 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