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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 2024년 1월 순국 Inside  길 따라 얼 따라 순국 역사기행 행, 식산은행 등을 폭파할 계획을 세웠고, 백범 김구도 김창숙과 의 논하며 의거를 지원했다. 나석주 는 1926년 12월 폭탄과 권총을 휴대하고 중국인으로 변장하여 서울에 잠입하였다. 그는 28일 오 후 먼저 큰 길 건너 조선식산은행 에 들어가 철책 너머로 폭탄 한 개 를 던졌고, 다시 동양척식주식회 사 경성지점으로 달려가 한 손으 로는 권총을 쏘면서 다른 한 손으 로는 폭탄을 던졌다. 나석주는 황 급히 출동한 경찰대와 기마대의 추격을 받자 총격전을 벌인 끝에 모두 7명을 살상한 후, 권총으로 자신의 가슴에 세 발을 쏘고 자결 하였다. 그는 자결 직전 “나는 조 국의 자유를 위해 투쟁했다. 2천 만 민중아, 분투하여 쉬지 말라!” 고 외쳤다고 한다. 아서원, 광복단결사대가 체포된 곳이자 조선공산당 창당대회가 열린 곳 중국요리집 아서원(雅敍園)은 1920년 8월 24일로 예정된 미국 의원단의 방문에 맞춰 광복군총영 장 오동진(吳東振)의 밀명을 받고 입국한 김영철, 김성탁 등의 광복 단결사대와 암살단이 8월 20일에 모임을 갖던 중 일제에 체포된 장 소이다. 1925년 4월 17일 김재봉(金在鳳)을 비롯한 사회주의계 독립운동가 19 명이 조선공산당의 창당대 회를 개최한 곳도 아서원이 었다. 을지로입구에서 서울광 장으로 가는 길에 있던 아 서원 터 앞에는 2023년 4 월 서울시에서 세운 ‘광복 단결사대 활동지 및 조선 ➎ ➏ ➎ 나석주 의사의 의거를 보도한 조선일보 호외 1면. 주요 부분이 조 선총독부 당국의 언론 검열로 삭제되어 있다.  ➏  구 외환은행 앞에 세워진 나석주 의사 동상 (‘나석주 열사의 상’이라 고 새겨져 있는 것이 이채롭다)  ➐ ➑ ➐  조선공산당이 결성된 아서원의 당시 모습(조선일보, 1927.4.3)  ➑  광복단결사대 활동지 및 조선공산당 창당대회 터 표지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