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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국 역사기행 ➊ • 서울, 독립운동과 역사의 현장을 가다 ⑰ 113 을 자원하여 수류탄 2개를 가지 고 일본으로 떠난다. 12월 22일 도쿄에 도착한 이봉창은 1932년 1월 8일 ‘덴노(天皇)’로 불리는 일 왕 히로히토[裕仁]가 괴뢰 만주국 황제 푸이[溥儀]와 더불어 도쿄 교외 요요키[代代木] 연병장에서 관병식을 거행한다는 신문 보도 를 접했고, 8일 오후 2시 도쿄 고 지마치구 밖 사쿠라다몬[櫻田門] 앞에서 관병식을 마치고 돌아가 는 일본 왕 행렬을 향해 수류탄을 던진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히로 히토가 탄 마차를 정확히 식별하 지 못한데다가 거리가 멀어 명중 시키지 못했고, 수류탄의 위력도 약했다. 체포된 이봉창은 그해 10 월 비공개 재판에서 사형선고를 받은 직후인 10월 10일에 이치가 야형무소[市谷刑務所]에서 순국 하였다. 효창공원의 3의사 묘와 임시정 부요인 묘, 백범 김구 묘와 백범 김구기념관 효창공원에는 윤봉길 · 이봉 창 · 백정기 등 삼의사(三義士) 묘와 안중근 의사의 허묘, 이동녕·조성 환·차리석 등 임시정부요인의 묘, 백범 김구의 묘가 있다. 삼의사 묘는 1946년 6월에 조 성되었다. 1932년 1월 8일 도쿄 에서 일왕 히로히토에 폭탄 의거 를 펼친 이봉창, 1932년 4월 29 일 홍커우공원 의거를 벌인 윤봉 길(1908~1932), 1933년 3월 중 국주재 일본대사 아리요시 아키 라[有吉明]를 암살하려다 체포되 어 옥사한 백정기(1896~1934)가 그 주인공이다. 일본에 있던 박열 등이 윤봉길 · 이봉창 · 백정기의 유 해를 수습하여 봉환했고, 백범 김 구가 부산으로 내려가 모셔왔다. 원래는 장충단공원에 모시려 했 으나, 여의치 않게 되면서 김구의 주선으로 효창공원을 선택했다. 삼의사 묘 옆에는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저격 한 후 체포되어 중국 단둥에서 사 형 당했으나, 끝내 유해를 찾지 못 한 안중근 의사(1879~1910)의 허묘가 있다. 묘 석축에는 ‘의사들 의 훌륭한 공적은 후세에 영원히 전해지리라’라는 뜻이 담긴 백범 김구가 쓴 유방백세(遺芳百世) 휘 호가 새겨져 있다. 임시정부 요인 묘에는 중국에 ➊ ➊ 이봉창의사역사울림관 안의 이봉창의사 흉상(이하 현장 사진은 필자 촬영) ➋ 이봉창집터 표지판 ➌ 효창공원 안에 있는 3의사 묘와 안중근 의사 허묘 ➋ 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