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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의 강산이 일제의 말굽에 짓밟히어 민족이 암울한 나날을 보내던 1940년대. 은밀히 독립운동을 도모하다가 피검되어 모진 고문 끝에 옥사한 한 청년이 있었으니.그는 진양하씨 창주 선생 제 13세손 하익봉 공이다. 1926년 출생하신 공은 진주고보 3학년에 재학 중이던 1943년 초부터 동기생 10여 명과 함께 비밀결사 광명회를 조직하여 독립운동의 실천방안 등을 논의하다가 발각되어 일본군 헌병대에서 형언할 수 없는 모진 고문을 당하고 1944년 11월 부산지검에서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기소되어 부산형무소에 수감되었다. 검찰심문과 수감 중 모진 고문으로 1945년 5월 그토록 갈망하던 조국광복을 눈앞에 두고 약관 20세의 꽃다운 청춘으로 일생을 마감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일신의 안위를 무릅쓰고 독립운동에 헌신하신 공의 애국심을 높이 찬양하고 201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이에 진양하씨 후손들은 만시지탄을 뼈저리게 씹으며 이제야 이 비를 세워서 공을 현창하고. 동시에 우리의 후손들에게 공의 숭고한 정신을 길이길이 전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