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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의 전설(101회) • 수원의 만세시위(1) 113 [소요 기생 공판, 징역 육개월 처형] 수원 기생 김향화(23)는 기왕 수원 소요시에 태 극기를 들고 여러 기생을 데리고 경찰서 문앞에 서 만세를 불렸는데 그 후 경찰서에 검거되어 취 조를 마치고 경성지방법원 수원지청 검사분국 으로 넘긴바 북촌 검사의 심리한 결과 지난달  27일 공판 개정한 후 보안법위반으로 징역 팔개 월을 구형한 바 유택판사로서 징역 육개월의 공 판을 언도 하였는데 방청석에 사람이 가득하였 더라(『매일신보』, 1919.6.20). 김향화는 서대문 감옥에서 유관순과 같은 감방에 서 함께 복역하다 고문 후유증으로 만기 1개월을 앞 두고 1919년 10월 27일 가출옥으로 나왔다(『매일 신보』, 1919.11.2 [金香花의 出獄, 소요 범인 수원 기생]). 감옥에서 풀려났지만 일제의 감시가 심하여 그녀는 ‘김우순’으로 이름을 바꾸고 1935년 상경한 이후 행적은 알려지지 않았고, 1950년 사망한 것으 로 추정된다. 2009년 정부에서는 대통령표창을 수 여했다. 3월 29일 밤에는 상인, 노동자 등이 시내 각지에 서 독립만세를 고창하고 일본인 상점에 돌을 던져 창문 을 파괴했다. 수원경찰서 순사들이 보병 및 소방조원 과 협력해 경계를 펼쳤다. 한편 3월 26일 이후 수원의 조선인 상점들이 철시 시위로 일제에 대항을 계속하자 일제 당국은 당황했 다. 외곽지역에서 격렬한 만세시위가 일어나고 있었 다. 4월 1일, 2일 이틀에 걸쳐 군수가 중요한 상인 약 60명을 소집하고 개점을 설득했다. 그제서야 상인 들은 철시시위를 풀고 4월 3일부터 개점했다. (계속) 서울대학교 국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3 ٠ 1운동의 지방시위에 관 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수석연구원 을 역임했고, 현재 3 ٠ 1운동기념사업회 회장을 맡고 있다. 3 ٠ 1운동을 중심으로 우리 역사를 새롭게 정리하는 일에 관심을 갖고 연구와 집필, 강연을 하고 있다. 필자 이정은 자혜의원으로 쓰이던 수원행궁 안의 봉수당(가운데,『발전하는 수원』[일문, 1914년]) 수원 기생시위를 주도한 김향화의 『조선미인보감』에  수록된 모습(수원박물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