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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국 역사기행 • 서울, 독립운동과 역사의 현장을 가다 ⑤ 113 과 공화당·유신정우회·통일주체 국민회의 해산 등을 주장하는 성 명을 발표하였다. 계엄포고령 위 반으로 체포된 이들은 전두환의 보안사 서빙고대공분실(對共分室) 에 끌려가 혹독한 고문을 당해야 했는데, 그 중에는 독립운동가 출 신 재야인사 함석헌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회영·이시영 6형제 집터와 우 당 이회영 흉상 YWCA 회관 옆에는 ‘이회영·이 시영 6형제 집터’ 표지석과 이회 영 흉상이 있다. 이회영(1867~1932)은 6형제 독립운동가(건영·석영·철영·회영· 시영·호영)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남대문 상동(尙洞)교회 안에 있던 상동청년학원의 학감으로 근무 하면서 1907년 4월에는 ‘신민회’ 발족에 참여했고, 1907년 6월에 는 '헤이그 특사' 파견을 주도하였 다. 1910년 8월 경술국치(庚戌國 恥)를 당해 명동 일대의 2만 평에 달하는 땅을 비롯한 집안의 전 재 산(당시 돈 40만 원, 현재 가치 약 600억 원 추정)을 정리하고 만주 로 망명하여 독립운동가의 산실 신흥무관학교를 운영하는 일을 주도하였다. 이시영(1869~1953) 은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국무위원 을 역임했고, 해방 후 6형제 중 유 일하게 생존해 귀국한 인물이다.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정부 가 정식으로 수립될 때는 초대 부 통령을 역임했고, 1952년 제2대 대선에서는 이승만에 대항하는 야권후보로 대통령 후보에 출마 하기도 했다. 향린교회와 민주헌법쟁취국민운 동본부 향린교회는 1987년 5월 27일 6월 민주항쟁을 이끈 민주헌법쟁 취국민운동본부(국본)가 출범한 곳이다. 국본은 4·13호헌조치 철 회와 대통령직선제 개헌을 내걸 고 야당 정치인과 시민단체, 종교 계 인사와 청년학생 등이 망라하 여 조직된 범국민 단체였다. 현재 향린교회는 도심 재개발 계획에 따라 이전했고, 건물은 재개발을 기다리고 있는 실정이다. 나석주 의사의 의거 현장 을지로 큰 길로 내려오면 명동 입구에 나석주 의사 동상이 있는 데, 3·1운동이후 상하이로 망명했 던 의열단의 나석주(1892~1926) 가 거사를 벌였던 동양척식주식 회사가 있던 곳이다. 나석주 의사의 의거는 김창숙, 김구, 의열단의 합작품이라는 성 격을 띠고 있었다. 1926년 6월 유 림을 대표하는 독립운동가 김창 숙을 만나 경제적 착취의 대표기 관인 동양척식주식회사와 조선은 ➌ ➍ ➌ YWCA 위장결혼식 사건을 보도한 당시 동 아일보 기사(1979.11.26) ➍ 이회영 · 이시영 6형제 집터 표석과 우당 이 회영 흉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