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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있는 우리 땅 • 경기도 부천 113 ‘부천’ 이전의 역사 한강의 물줄기와 가까운 곳에 위치한 현재의 부천지역은 선사 시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그 역사적 연원만큼이나 오랫동안 여러 변화와 발전을 거듭해왔다. 선사시대 부천지역을 대표하는 고강동(古康洞) 유적은 사람이 살 기에 적합한 곳이었다. 한양대 배 기동 교수팀이 발굴한 고강동 유 물들이 이를 말해준다. 고강동 선 사유적은 총 7차에 걸친 발굴에 서 21기의 주거지가 확인되었다. 주거지에서 도끼, 간돌검, 돌촉, 반달돌칼, 가락바퀴 등이 출토되 었다. 고강동 선사유적 중 주목할 만 한 것은 적석환구 유구이다. 이는 청룡산 최정상부인 해발 91.6m 지점에서 발굴되었다. 적석환구 (積石環溝)는 고강동 선사유적지 에서 가장 높은 곳에 독립적으로 위치하는 입지적 특성, 제기형 토 기가 출토된 점, 바닥면에 불탄 흙 의 흔적이 남아 있는 점을 고려해 볼 때 제사유적으로 파악된다. 고 강동 선사유적은 한강 유역의 초 기 국가단계의 문화를 엿볼 수 있 는 자료를 제공하였다. 이후 사람이 거주하기 좋았던 한강유역을 둘러싼 고구려·백제· 신라 삼국의 패권 다툼이 치열하 게 펼쳐졌던 지역 가운데 하나가 부천이었다. 이후 부천지역은 삼 한시대 마한 54 소국의 하나였다 가 8년에 백제에 병합되었다. 이 후 백제는 475년(장수왕 63년) 고 구려의 공격을 받아 수도 한성을 비롯한 한강 일대를 빼앗겼다. 한 성과 오늘날 부천 일대를 차지한 고구려는 광개토대왕과 장수왕으 로 이어지는 전성기를 누렸다. 그 러다가 551년 백제와 신라는 한 강 유역을 공격하여 부천 일대의 한강 하류 지역은 백제가, 한강 상 류 지역은 신라가 분할 점령했다. 553년 신라는 한강 하류 지역을 급습하여 백제군을 몰아냄으로써 한강 유역 전체를 독점하였다. 부 천은 신라의 영역으로 편입된 후 에도 여전히 주부토로 불린 것으 로 보인다. 주부토군은 통일신라 시대인 757년(경덕왕 16)에 장제 군(長堤郡)으로 개칭되었다. 고려 태조 왕건(王建)은 940년 (태조 23년)에 전국 주·부·군·현의 지명을 고쳤다. 이때 부천의 지명 ➊ ➋ ➊ 부천시립박물관 전경 ➋ 「부천시50년, 그 발자취를 찾아서」 특별전 입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