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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국 역사기행 • 역경 극복 중앙아시아 고려인들 113 정)의 집을 방문하였다. 고려극장 은 고려인 문화예술의 상징으로 강제이주라는 가혹한 역사적 시 련기에도 살아남아 걸출한 입담 과 흥겨운 가무로 절망에 빠진 고 려인 동포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달래줌으로써 어려운 시기에 심 리적, 정신적 위안과 치유의 역할 을 하였다. 고려일보를 방문했는데 고려일 보 김콘스탄틴 총주필이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내가 받은 명 함에 ‘뿌리를 잊지말자’라는 문구 가 새겨져 있어 고려인으로 자긍 심을 가지고 신문을 발행하고 있 음을 알 수 있었다. 고려일보는 경 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해서 마음이 짠하였다. 연해주에 서는 『해조신문』·『대동공보』·『대 양보』·『권업시문』 등이 발간되었 고, 1923년 『선봉』 창간이후 강 제이주 과정에서도 한글 납 활자 를 보자기에 싸서 보관하여 강제 이주 6개월만에 다시 한글신문을 발행하기도 했다. 다음으로 방문한 ‘우호(우정)의 집’은 카자흐스탄 130개 민족의 우호와 친선, 선린을 위해 운영되 고 있었다. 고려인들의 살아온 궤 적과 활동을 통해 고려인의 위상 을 보여줌은 물론 소수민족 간 협력을 통 해 카자흐스탄 의 동화정책과 화합 방침을 보여주는 곳이 었다. 우리대 표들과 독립운 동가 후손들은 ‘우호의 집’ 관 계자들과 환담 하고 고려인들 의 지원과 협 조를 당부하였 다. 또 크즐오 르다에서 1박 다음날 크즐오 르다 국립대학 을 방문했다. 연해주 원동 고려사범대학의 전신인 크즐오르 다 국립대학에는 강제이주 당시 함께 전해진 고서(古書)들을 대학 박물관에서 보관하고 있었다. 감격스런 ‘홍범도 거리’ · ‘계봉우 거주지’ 방문과 한글 현판식 그 뒤 우리 일행은 홍범도(洪範 圖) 장군과 계봉우 선생을 만나기 위해 발길을 옮겼다. 우리가 도착 한 곳은 ‘홍범도 거리’로 명명된 거리였다. 크즐오르다 시(市) 정부 에서 홍범도 장군을 기리기 위해 ‘홍범도 거리’로 지정했다. 현재 러 시아어로 되어 있는 ‘홍범도 거리’ 현판과 별도로 한국어와 카작어, 양국 국기를 넣은 현판을 제작 기 증하여 크즐오르다 시 정부와 현 크즐오르다 고려극장을 방문한 탐방단 강제이주 당시 고려인들이 보관하고 있던 고서를 크즐오르다 국립 대학에서 수집하여 박물관에 전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