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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 2025년 5월 순국 Focus 역사의 시선으로 3월의 전설(114회) 유봉영도 철산이 고향으로, 1914년에 철산면이 된 고성면 동부동 230번지에서 태어났다. 나이는 정석 해 보다 2살 위였다. 그는 정석해가 연희전문에 입학 했던 1917년에 정석해가 다녔던 철산의 명흥학교(明 興學校)에서 영어와 역사, 지리를 가르치는 교사로 근무하고 있었다. 철산에는 이 선언서 외에도 교회 계통 을 통하여도 전달되었다. 경의선 역이 있 는 참면 차련관에서는 3월 5일 철산군 첫 만세 시위가 일어났다. 유봉영은 8~9명의 동지들과 의논하여 3월 7일 철산 읍내 장날을 기해 시위를 벌였다. 시위는 5천명 이상의 군중이 모 인 전국적인 규모로 크고 격렬하게 전개 되었다. 정석해의 피신 3월 13일 정석해는 일본 형사의 추적 을 피해 고향 철산으로 돌아갔다. “가라우. 얼른 피신하라!” 아들을 걱정한 부모님이 그의 등을 떠 밀었을 것이다. 그는 3월 18일에 압록강 을 건넜다. 만주로 간 정석해는 1920년까지 안동 (安東, 현 단동), 길림(吉林), 국내를 오가 며 무기 전달, 요원의 잠입 안내, 국내 인 사 망명 안내 등 독립운동 조직의 비밀 연락원 임무를 수행했다. 유봉영의 피신 철산면 시위에 놀란 일제는 주도자에 대한 수배령 을 내렸다. 유봉영도 압록강을 건넜다. 그는 중국 상 해(上海)로 갔다. 그는 임시정부 재무부에서 일하면 서 임시정부 자금 조달을 위해 활동했다. 그는 소설 『압록강은 흐른다』의 이미륵으로 잘 알려진 이의경 (李儀景) 등과 대한적십자사 창설에 참여했다. 고향 1918년 명흥학교 졸업식 사진. 뒷줄 왼쪽 첫번째 심치규 교장, 유진사(철산교회 간부), 장관선 목사(가운데), 오른쪽 첫번째 안태영 선생, 두번째 유봉영 선생, 네 번째 최국인 선생, 김창락, 사경욱(앞줄 좌측 두번째) 등 학생들이 앉아있다. 1917년 명흥학교(철산면 동부동) 교정에서 교사와 학교 간부들이 신식 운동경 기 정구(테니스)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