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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독립운동과 민주화운동의  역사에 관심이 많은 서울지역 학부 모와 함께 서울 곳곳을 탐방하고  있다. 이번에는 용산구 일대의 근 현대 역사 현장 탐방 이야기이다.  용산구 일대 탐방은 지하철 6호선  효창공원역 인근 이봉창의사역사 울림관에서 출발하여 옛 남영동대 공분실에서 마무리하는 코스를 선 택했다. 용산구는 일제강점기에도  경성부의 한 부분이었다. 용산은  1919년의 3·1운동을 비롯한 독립 운동에 적극 참여한 역사가 있고,  의열투쟁의 대표적인 인물 김익상 과 이봉창을 배출한 지역이기도 하 다. 효창공원과 백범김구기념관,  식민지역사박물관을 비롯하여 민 주화운동시기 악명을 떨쳤던 남영 동대공분실 등 볼거리도 많다. 서울, 독립운동과 역사의 현장을 가다 ⑰ 용산구 일대의 근현대 역사 현장 3 · 1운동 현장, 이봉창 · 김익상 의사 출신지 뼈아픈 한국현대사의 현장, 아직도 그대로 남아  이봉창집터 · 효창공원 · 김구 묘 · 백범김구기념관 용산적색노조 사건 현장, 식민지역사박물관도 김창룡 피살지, 남영동대공분실 박종철 고문치사, ‘6· 10항쟁’ 폭발 112 2025년 1월 순국 Inside  길 따라 얼 따라 순국 역사기행 ① 글  김학규(동작역사문화연구소 소장) 이봉창 집터와 이봉창의사역사 울림관 원래 효창공원역 1번 출구에 ‘이봉창 의사 생가터’ 표석이 있었 다. 하지만 이봉창(1901~1932) 이 태어난 곳은 대각선 건너편의 원효로 2가이다. 한동안 엉뚱한 곳에 생가터 표석이 세워져 있었 던 셈이다. 2020년에 개관한 ‘이 봉창의사역사울림관’과 서울시가 세운 ‘이봉창 집터’ 표지판이 있 는 효창동 118번지는 이봉창이 1917년 이후 살던 집이 있던 곳 이다. 이봉창은 문창보통학교를 마 친 뒤 일본인 상점 점원에 이어 1919년에는 용산철도국에 임시 인부로 들어가 역부로 일했다. 1924년 일본으로 건너가 오사카 와 도쿄 등지를 전전하며 철공소 직공 등의 생활을 하면서 뼈저리 게 느낀 일제의 민족차별은 그가 중국 상하이로 망명(1931년 1월) 하게 되는 주요 원인이 되었다. 이봉창은 1년 가까운 준비기간 을 거쳐 1931년 12월에 백범 김 구의 한인애국단(韓人愛國團)에 가입하였고, 일본 천황 주살(誅殺)