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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 2024년 10월 순국 Focus   역사의 시선으로 3월의 전설(107회) 4월 3일 밤 10시 예산면 신례원리에서 300여명의 군중이 헌병주재소 부근 산 위에 모여 화톳불을 피우 고 독립만세를 외쳤다. 신례원 주재소 헌병들이 급히 출동하여 해산시키고 주도자 3명을 체포했다. 4월 4일의 인근 지역 일대 산상 횃불시위 4월 4일 예산을 중심으로 대술면, 오가면, 신안면 고덕면, 신양면 등 약 15개소에서 밤 10시경부터 군 중들이 봉화를 들고 산 위에 올라가 어둠을 밝힌 가 운데 독립만세를 불렀다. 『매일신보』가 이날을 보도 했다. [소요사건의 후보(後報), 충청남도 예산 불을 들고  소요] 예산군 당면 내에서는 지나간 4일 오후 10시경부 터 예산면 대술면 오가면 신압면 고덕면 각 리 신양 면 일부 약 15개소에서 각각 다수한 군중이 각각 봉 화를 들고 소요를 하였고(『매일신보』, 1919. 4. 10)  4월 5일 예산 장날 대규모 만세시위 여러 번 거사에 실패했던 예산면에서 4월 5일 드 디어 제대로 불이 붙었다. 이날 오후 3시경 예산면 예산리 예산 시장에서 신양면 죽천리 박대영(朴大永, 37세, 농업)이 약 50명을 이끌고 조선독립만세를 외 쳤다. 시장 장꾼들이 합세하여 순식간에 약 2,000명 의 대군중이 되어 독립만세를 연호할 때 산천이 진 동했다. 이들은 예산헌병분대 앞에서 독립만세를 불 렀다. 헌병 상등병 소기 아키히데[曾木秋秀]가 주도 자 박대영을 체포하려 했다. 박대영은 널판지를 휘 두르며 저항했다. 그러다 소기 헌병이 곤봉을 휘두 르며 끌고가려 하자 응봉면 후사리 사는 최문오(崔 文 吾, 44세, 농업)가 달려와 주먹으로 헌병을 때려 눕히 고 박대영을 구출했다. 공주 수비대 병력이 응원차 달려와 시위대를 향하여 실탄 사격을 가했다. 총구에 서 불을 뿜자 6명이 현장에서 사망하고 3명이 부상 을 당했으며, 9명이 체포되었다. 처참한 학살의 현장 에 비가 내렸다. 만세시위 군중은 해산하고, 헌병들 의 가택 수색 등으로 35명이 체포되었다. 박대영, 최 문오는 각각 징역 1년형을 받았다. 고덕면 예산 읍내에서 서북쪽으로 15km 거리에 있는 고 덕면에서는 4월 3일 고덕면 대천리 대천[한천] 시장 에서 약 1,000명의 군중이 독립만세를 외쳤다. 대천 헌병주재소 헌병들이 출동하여 해산을 명했으나, 군 중들은 불응했다. 헌병들이 총을 발포하여 1명이 현 장에서 즉사했다. 고덕면 상궁리 장문환(張文煥, 33 세 농업)은 이정래의 장남 등 14~5명을 이끌고 시신 을 주재소로 운구하고, 헌병 오장(伍長) 시무라 마쓰 다로[志村松太郞] 소장에게 항의했다. “어째서 인민을 살해하는가! 이 사람을 살리지 못 하면 우리도 모두 죽여라!” 소장은 힘으로 장문환을 밀쳐내고 시신도 사무실 밖으로 끌어냈다. “우리도 죽여라!” 장문환은 소장에게 달려들어 주먹으로 가슴을 구 타했다. 홍성에서 보병 80연대 하사 이하 7명이 자동차로 달려왔다. 헌병들은 응원 보병과 협력하여 주도 인사 7명을 체포하고, 시위대를 해산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