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page
112 2024년 8월 테마가 있는 독립운동사 ② 순국 Focus 역사의 시선으로 덕, 재무 정인영이 맡았다. 파차파 애비뉴 1532번지 의 리버사이드지방회 회관이 폐쇄된 이후, 국어학교 는 한인장로교회에서 강습을 하였다. 리버사이드에서 개최된 북미지방총회 대의원회 1910년 2월 10일 미주 최대의 한인단체로 대한인 국민회가 성립되었는데, 북미지방총회는 다음해 총 회의 대의회는 리버사이드에서 개최하기로 결정하 였다. 리버사이드와 그 근처는 300명 이상의 한인 들이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1911년 11월 23일부터 12월 4일까지 북미지방총회의 대의회가 리버사이드 지방회에서 열렸다. 이 대의회에는 국내에서 탈출하 여 유럽을 거쳐 미국에 다시 돌아온 도산 안창호 가 참석하였다. 『신한민보』 1910년 10월 5일자에 “리 버사이드 지방은 미국 올 때에 제일 먼저 창설한 한 인의 동리가 될 뿐만 아니라, 국민회를 처음 시작하 여 지방회가 제일 먼저 설립된 곳”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리버사이드지방회에서는 1913년 3월 2 일 화재가 발생하여 회관과 교회의 많은 물품이 모 두 탔다. 그리고 지방회 임원들이 다른 지역으로 떠 나면서 재정 부족으로 1913년 6월부터 지방회관 을 폐쇄하였고, 같은 해 10월 다시 지방회를 복설하 게 되었다. 1913년 당시 리버사이드지방회 회장 차 정석, 부회장 김순학, 서기 겸 총무 정영도, 재무 겸 리버사이드 대학교 도서관(Rivera Library). 김씨가족(Kim’s Family Papers)의 자료가 소장되어 있다. 리버사이드 시청 광장에 세워진 도산 안창호 동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