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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호에서는 지난 5월 29일 노원 평생학습관 주최로 진행된 노원구 일대의 근현대 역사 현장을 탐방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노원구는 일제강점기 양주군 노해면에 속해 있던 곳으로 김상옥 의사와 연계된 유득신의 독립군자금 모금활동과 전설적 사회주의계 독립운동가 이 재유·이관술의 활동터이기도 했다. 또 88서울올림픽을 앞둔 정부의 강제철거정책에 맞선 도시빈민의 주거권 쟁취 투쟁과 노원구 쓰레기 소각장 반대운동의 역사가 서려 있 는 곳이기도 하다. 노원구 일대의 근현대 역사 현장 탐방은 녹천역에 서 시작하여 중계그린아파트단지 와 경춘선숲길을 거쳐 국립서울과 기대에서 마무리하는 코스를 선택 했다. 전철 1호선 녹천역이 도봉구 창동에 속해 있음에도 이곳에서 모 여 시작한 이유는 노원구 사람들의 3·1운동과 이곳에서 체포된 이재유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서였다. 서울, 독립운동과 역사의 현장을 가다 ⑪ 노원구 일대의 근현대 역사 현장 창동리 · 도봉리에서 1919년 3월 말 세차례 시위 상계동 철거민 시위, 쓰레기소각장 반대운동도 유득신 · 이건명 · 이재유 · 한재문 등 활동 경성제대 이공학부 자리에 서울과학기술대 세워져 112 2024년 7월 순국 Inside 길 따라 얼 따라 순국 역사기행 글 김학규(동작역사문화연구소 소장) 3·1운동에 참여한 노원 사람들 1919년의 3·1운동은 대한민국 을 탄생시킨 역사적인 사건이었 다. 노원지역은 3·1운동 당시에는 경기도 양주군 노해면에 속해 있 었다. 당시 기록에 지금의 노원지 역에서 벌인 만세운동은 확인되 지 않는다. 하지만 노원구가 포함 된 양주군 노해면의 창동리와 도 봉리에서 만세운동이 여러 차례 벌어졌다. 일제 자료에 따르면 창 동리에서는 26일에 250명, 27일 에 490명, 29일에 500명의 군중 이 참여하는 세 차례의 만세시위 가 있었다. 인근 도봉리에서도 창 동리 만세운동이 시작된 3월 26 일에 400명이 참여하는 만세운동 이 있었다. 경원선의 정차역이 있던 창동 리는 당시 노해면의 중심지였다. 이를 감안한다면 3월 26일과 27 일, 29일 등 3일에 걸쳐 벌어진 창동리의 만세운동에는 노해면에 속해 있던 노원지역 사람들도 다 수 참여했을 것으로 보인다. 총독이 탄 열차를 향해 돌을 던진 청년 이건명 1931년 4월 20일 철원 도립의 원 낙성식에 참석하고 경성으로 돌아오던 사이토 마코토[齋虅 實] 총독이 탄 열차가 창동역에서 정 차한 후 다시 출발했다. 창동역에 서 400-500m 정도 지났을 무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