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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 2023년 8월 순국 Inside 길 따라 얼 따라 자랑스런 우리 것들 렸다. 곶감과 대추, 사과를 사용하 는 것은 이주 전의 전통이 남아 있 다는 것을 보여준다. 비스킷 접시 에 젓가락을 걸쳐 놓았는데, 별도 로 시접(匙楪 )을 사용하지 않는다 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상을 영좌 (靈座)로 봐도 좋다. 전통적으로 영좌 앞에 차리는 전(奠)은 술과 과일, 포로 구성된 주과포(酒果脯)를 차리도록 하였 는데, 중국의 영향인지 알 수 없으 나 포는 차리지 않았다. 영좌를 중 심으로 노란색 국화, 붉은색 꽃, 분홍색 꽃, 푸른색 잎 등으로 만든 꽃바구니를 빙 둘러놓았다. 이 꽃 들은 모두 고인의 친척들이 보낸 것으로, 꽃바구니에는 고인을 애 도하는 글귀와 보낸 사람의 이름 을 적은 리본이 걸려 있다. 영정 뒤쪽은 창문이 있는데, 약 간의 무늬가 있는 소색(素色) 천으 로 창문을 가렸다. 영정을 쳐다보 면서 왼쪽인 서쪽벽은 누런색 종 이로 가리고, 그 위에 명정을 걸었 다. 명정 옆쪽에는 평소에 사용하 던 벽시계가 걸려 있다. 명정을 거 는 위치는 영좌의 서쪽(바라보면 서 왼쪽)이므로 한국의 전통과는 반대이다. 명정(銘旌)은 붉은색 면 종류의 천에 검은색으로 “현고학생청하 이씨지구(顯考學生淸河李氏之柩)” 라고 썼다. 한국의 문화적 전통에 서 명정은 “학생청하이공지구(學 生淸河李公之柩)”라고 써야 한다. 그러나 이 옹의 명정에는 지방에 쓰는 “현고”라는 형식과 명정에 쓰는 ‘지구(之柩)’라는 형식이 섞여 있고, “이공(李公)”이 아니라 “이씨 (李氏)”라고 써 중국의 영향과 전 통이 변화되었음을 보여준다. 또 한 명정의 글씨는 금색으로 쓰고, 천은 붉은색 비단을 사용하도록 하는 것과는 차이가 보인다. 글씨 는 중국의 간체자가 아닌 정자체 를 사용하여 조선의 문화적 전통 을 계승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 영좌의 특징은 병풍을 사용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는 집 에서 사용하는 병풍이 없었으므 로 사용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 다. 또한 중국 문화의 영향을 받았 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영 정의 붉은색 배경, 붉은색 조화(弔 花) 등 붉은색을 많이 사용한 것은 중국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중국에서는 붉은색이 복을 부른 다고 인식하여 여러 의례에서 많 이 사용되고 있다. 그리고 향로가 없는데, 이는 의례 때 향을 피우지 않는 것이 일반화된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한다. 상주는 일상복을 입은 상태로 광목천을 허리에 묶는 것으로 상 복을 대신한 것처럼 보인다. 이는 간이 상복으로 볼 수도 있고, 일제 강점기 만주로 이주한 한인들이 누려온 한국의 전통과 중국의 전 통이 융합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한국에서는 상복을 입지 못할 정도로 가난하면, 이웃의 도움으 로 삼베 천을 허리에 묶는 풍속 과도 관련이 있을 듯하다. 평상복 에 삼베로 허리를 둘러 묶는 것은 원래 초상이 나서 그래서 한국의 “초상이 났으니 삼베쪼가리라도 걸쳐야 상주의 체면을 한다.”라는 속담과도 관계가 있어 보인다. 공식화되지는 않았지만, 『표준 의례』(1961)에서는 “정결한 평상 복에 마포 두건”을 쓰도록 하였 고, ‘건전가정의례준칙’(1999)에 서는 초상이 나면 “상복은 따로 마련하지 아니하되, 한복일 경우 에는 흰색으로, 양복일 경우에는 검은색으로 하고, 가슴에 상장(喪 章)을 달거나 두건을 쓴다. 다만, 부득이한 경우에는 평상복으로 할 수 있다.”라고 하여 양복에 두 건을 쓰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