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page

3월의 전설(110회) • 황해도 안악군의 독립만세 시위운동(1) 111 (전략) 조그만 지역의 시장[안악군 은홍면 온정시 장으로 추정]에서도 집회를 하기로 결정되었다. 대규 모 군중이 소리를 지르고 이야기했다. 헌병주재소장 은 이것은 중단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들을 꾸짖 고 때림으로써 이를 달성하려 했다. 우리 교회의 장 로 중 한 명인 조선인이 그 군중을 대표했다. 그는 그 가 주재소로 다시 돌아가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조 선인 헌병을 총과 함께 돌려보냈다. 헌병이 군중을  쐈고 군중은 다시 그에게서 총을 빼앗아 시위가 끝 날 때까지 일본인 상인이 그것을 맡아두도록 했다.  헌병은 또 다시 주재소에서 군중들을 향해 사격했고  군중들은 돌을 던졌다. 곧 헌병이 우위에 섰고 군중 들은 해산하기로 결정했다. 총 3명이 죽었고 그들 중  한 명은 비신자였다. 나머지는 거의 죽을 뻔 했지만  살았다. 많은 사람들이 다쳤다. (중략) 안악(Anak)교 회에서는 목사를 포함해 14명 목회자 모두 체포되었 다. 교인들에게 고문이 행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비 신자들에 대한 고문은 많은 깃발이 어디에서 만들어 졌으며 누가 만들어졌는지를 밝혀냈다. 선교사 베시(Frederick G. Vesey, 한국명 예시, 芮 詩)와 연희전문학교 부교장 빌링스(Bliss W. Billings, 한국명 변영서, 邊永瑞)가 세브란스병원에서 안악 만 세시위에서 총상을 입은 환자를 만났다. (13) 안악에서 온 72세 Kim Kwang Un[김광운 (연)]은 시장[온정시장]으로 가서 약 500~600명의 사 람들과 만세를 외쳤다. 헌병 주재소장이 사람들에게  해산하라고 하며 몇 명을 떄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욕설을 했다. 이에 군중들이 둥글게 에워쌌고, 헌병  주재소장에게 왜 사람들을 때려야만 하는지 항의했 다. 그러자 사람들을 때렸고 몇 명이 헌병대에서 체 포되었다. 사람들은 이들을 풀어주라고 요구했다. 군 중들이 해산하지 않자 2명의 일본인과 3명의 한국인  헌병 보조원들이 와서 사격을 했고 3명이 죽고 약 20 명 정도의 많은 사람들이 부상당했다. 그러자 한국인 들이 모여들어서 헌병대에 돌을 던졌고 헌병들은 울 타리 뒤에서 계속 발포했다. 김광운 씨는 어깨에 총 을 맞아 서울에 오려고 했으나, 진남포에서 체포되어  손이 묶였고 누가 세브란스 병원으로 가라고 했냐며  질문을 받고 맞고 모욕을 당했다. 김광운씨는 서울로  와서 바로 치료를 받았고 그는 장로교회의 일원이다.  (계속) 서울대학교 국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3 ٠ 1운동의 지방시위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수석연구원을 역 임 했고, 현재 3 ٠ 1운동기념사업회 회장을 맡고 있다. 3 ٠ 1운동을 중심으로 우리 역사를 새롭게 정리하는 일에 관심을 갖고 연구와 집필, 강연을 하고 있다. 필자 이정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