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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대 3부자 독립운동가 홍재설, 홍종옥, 홍종엽 지사 묘역입구 1대 홍재설(洪在卨, 1874.1.9 ~ 1939.10.25) 홍재설은 동우회라는 항일단체 중심인물로 1907년 고종황제의 헤이그 특사 파견을 빌미로 강제 퇴위와 일왕 사죄를 강압적으로 추진한 일제에 맞서 석고단에서 대규모 군중시위를 주도하였다. 그럼에도 고종황제가 강제 폐위되자 결사대를 조직해 친일단체 일진회 기관지 국민신보사를 습격한데 이어 고종 폐위를 주도한 총리대신 이완용 체포에 나섰으나 도주하자 가택에 불을 질러 전소시켰다. 시위 주동자들이 내란죄로 체포되어 혹독한 고문을 받는 가운데 홍재설은 평리원에서 유형 10년을 선고받고 전남 지도로 유배되었다. 1910년 유배에서 풀려난 후 처가 마을인 용인군 포곡면 금어리에 정착해 살았으며 1939년 10월 25일 타계 하였다. 공훈을 인정받아 2019년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가되었다. 2대 홍종욱(洪鍾煜. 1893.7.2 ~ 1967.11.22) 홍종엽(洪鍾熀. 1899.10.15 ~ 1983.6.25) 형제 홍재설의 아들인 홍종욱, 홍종엽 형제는 1919년 3월 28일 포곡지역 독립만세시위를 주도한 인물로 시위 당일 미리 제작한 태극기를 나누어 주며 금어리 주민 2백여 명을 이끌었다. 인근 시위대와 합세하여 김량장리 소재 용인군청 방향으로 시위행진을 벌였으나 수포교를 지나 유방리에 도달할 무렵 일본 경찰의 해산명령에 이은 발포에 여러 사상자를 내고 저지당하였다. 시위를 주도한 홍종욱. 홍종엽 형제는 보안법 위반 혐의로 일본 경찰에 끌려가 혹독한 고문과 재판을 받았으며 같은 해 5월 13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10월형을 선고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두 분 형제의 공훈이 정부로부터 인정되어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