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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스런 우리 것들 • 중국 조선족 장례문화 ① 111 대로 교육받지 못하였다. 해방 후 중국 인민해방군에 입대(1947년) 하여 교육 기회를 얻었다. 이 옹은 인민해방군으로서 중국 남방의 해남도(海南島)와 6·25전쟁(중국 에서는 ‘항미원조[抗美援朝]’ 전쟁 이라 함)에 참전하고, 1959년 랴 오닝성 금주(錦州)에서 영관장교 로 전역하였다. 전역 후 푸순시(抚顺市) 기계창 에서 무장부 부장과 행정과장을 거쳐 83년 퇴직하였다. 중국에서 는 해방 이전에 근무한 국민은 그 공로를 보상하고자 실제적으로는 정년퇴직을 하였지만, 급료 등 현 직에 있을 때와 같이 대우하였다. 그래서 퇴직이 아니라 이직(離職) 이라고 한다. 슬하에 2남 4녀를 두었다. 푸순에서는 2002년부터 사망 자의 시신은 집이나 병원에서 모 실 수 없고, 반드시 화장장의 안 치소에 모시도록 법률화 되어 있 다. 이 옹은 노환으로 병원에서 운 명하였으므로, 법에 따라 운명하 자마자 화장장에 마련된 안치소 에 시신을 안치하였다. 시신을 안 치소에 안치하였으나 안치소에서 장례를 치를 수가 없어 장례는 집 에서 치렀다. 고인이 생전에 살던 곳이 아파트였는데, 고인이 생활 하던 방에 빈소를 차리고 문상객 을 맞이하였다. 집에서 장례를 치 렀지만, 집에서 하는 일은 문상객 을 맞이하는 정도만 있었다. 빈소의 형태는 전통적인 모습 이나, 현재 한국의 장례식장과는 많은 차이가 있었다. 바닥에 두레 상을 놓고 그 위에 흰 종이를 깔고 고인의 영정을 모셨다. 영정은 검 은색 액자를 사용하였고, 액자 테 두리에 검은색 리본을 걸었다. 일 제의 잔재인 커튼 형식의 검은색 리본과는 차이가 있다. 사진의 배 경이 붉은색으로 되어 있는 것은 중국 문화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 이다. 영정 앞에는 유리로 된 술잔을 놓았는데, 접시를 잔 받침으로 사 용하였다. 그 앞으로 귤, 과자, 비 스킷, 만두, 곶감, 사과, 대추를 차 빈소 영좌(靈座)의 상차림 영 정 명 정 꽃 꽃 꽃 술잔 귤 곶감 사과 대추 과자 비스킷 만두 젓 가 락 꽃 꽃 꽃 꽃 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