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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 2025년 2월 테마가 있는 독립운동사 ② 순국 Focus 역사의 시선으로 성공을 거두었 다. 정안주식회 사가 발전할 수 있던 것은 사원 전체의 모든 일 을 함께 하는 팀 워크가 좋았기 때문이다. “맡은 바 직책에만 성 의를 다하여 마 치 군대의 군제 (軍制)와 같이 매 니저먼트의 지 휘하에 복종함 으로써이다. 다같이 너나 하고 지내는 친구이지만, 사무 진행에 들어서는 각기 맡은 분업 범위 안에서 만 활동하고 있다”라고 하였다. 정안주식회사는 1926년 8월 20일 사업 확장을 위 해 사옥을 신축하여 이곳으로 이주하였다. 신사옥은 건물과 기구가 모두 쓰기에 편리하게 되었다. 1930 년 8월 18일 정안주식회사 소년병학교에서 함께 수 학한 백일규가 정안주식회사를 방문하였다. 그는 “정안회사 굉장하든 말만 들었더니, 지금 와서 본즉 과연 그랬다. 시방 한인계의 구멍가가만 보다가 정 안회사를 처음 목도하니 참말 훌륭하다”고 하였다. 정안주식회사는 1930년 새로 지하 1층 지상 1층 건 물을 지어 새롭게 단장하였다. 회사에는 벽과 바닥 에 흰 타일을 깐 주방과 특수 강철 용기 등 최신식 시 설을 갖춘 음식 제조회사였다. ‘에덴동산’과 같은 디트로이트 한인사회 미주 한인사회는 분란과 분쟁이 끊임없이 일어났 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미주의 모든 지역이 파 란과 분쟁으로 얼룩져 있었다. 미주에서 오직 한 곳, 디트로이트의 한인사회는 ‘에덴동산’과 같다고 했 다. 디트로이트의 한인들은 경제적으로 풍요하고, 동포들끼리 서로 돕고 자신이 가진 것을 희생하는 사회적 분위기로 가득찼다. 그래서 디트로이트의 한 인사회를 ‘에덴동산’이라고 했던 것이다. 디트로이트에 한인사회가 평화로왔던 이유는 경 제적으로 안정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경 제적 안정에는 정안주식회사와 유한주식회사와 같 1946년 경 유일한의 가족들(오른쪽이 부인, 앞은 딸 유재라, 아들 유재선, 나무위키 제공) 안재창 등 러벌(Lavell) 한인들의 독립의연금 기록(1919년 3월 27일 ) 안재창이 대한인국민회 중앙총회장 대판 백일규에게 보낸 인구세 보고(1919년 8 월 25일, 이상 대한인국민회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