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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 2025년 1월 순국 Focus   역사의 시선으로 3월의 전설(110회) 와 인도(人道)에 입각하여 만세 시위를 질서 있게 전 개할 것을 결의하였다. 태극기와 함께 “대한 독립”이 라고 쓴 큰 깃발을 앞세우고 시위대가 독립만세를 높 이 외치면서 시가행진을 시작하자, 장꾼들이 적극적 으로 호응하여 시위대는 1,000여 명으로 늘어났다. 이때 72세의 고령인 박승도(朴承道), 김광연도 만세 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시위대는 시가지를 두어 번 돌고나서 온정헌병주 재소로 향하였다. 일본인 헌병과 한국인 헌병보조원 2명이 달려 나와 시위대를 가로막았다. 헌병과 헌병 보조원들이 “대한 독립”이라고 쓴 큰 깃발을 빼앗으 려고 하여 시위대와 몸싸움이 벌어졌다. 온정동 헌병 주재소장이 해산을 명하면서 사람들을 구타하고 체 포하였다. 군중들은 외쳤다. “사람들에게 폭력을 쓰지 말라!”  “체포한 사람들을 석방하라!” 헌병들은 시위대를 향해 발포하기 시작하였다. 시 위대는 물러서지 않고 주재소를 향해 돌을 던지며 대 항하였다. 시위대의 투 석으 로 주재소 일부가 파괴되 고, 헌병 1명과 보조원 1명 이 부상을 입었다. 헌병들 은 주재소 울타리 뒤에 숨 어 군중을 향해 총을 난사 했다. 헌병의 무차별 발포 로 김학규(金學圭)·박승도· 전인식(全仁植) 등 3명이 사 망하였고, 10여 명의 중상 자와 수십 명의 경상자가 발생하였다. 헌병들의 계속 되는 발포로 시위대가 흩어지고, 박치간·정계로·정공 로 등 주도자들이 헌병들에게 끌려갔다. 김광연(72세)은 어깨에 총상을 입고 경성(京城)으 로 치료를 받기 위해 기차역이 있는 강 건너 진남포 (鎭南浦)로 갔다가 거기서 체포되어 두 손이 묶인 채 욕설과 구타를 당했다. 신문을 받고 풀려난 김광연 은 재령읍(載寧邑)에서도 같은 일을 당하고서야 겨 우 경성에 도착하여 세브란스병원에 입원, 치료를 받았다. 3월 11일 온정리 시위로 7명이 검거되었다. 왼쪽 갈비뼈에 총상을 입은 채 시위 현장에서 체포된 정계 로는 징역 4년형을 받았다. 선교사들의 보고 은홍면 만세시위에 대해서는 선교사 보고서(영사 관문서 No. 800: Intervention of U.S. Government in Reestablishing the Independence of Korea, etc. Seoul, Korea)가 남아 있어 구체적인 실상을 전 한다. 3·1운동 당시 전국 각지에 널리 배포된 독립선언서(대한민국역사박물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