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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 2024년 11월 순국 Focus 역사의 시선으로 3월의 전설(108회) 수십 매를 가져가 배포하고, 장덕균도 3월 25일에 중대면 송파리의 정석호에게 2매, 기타 여러 명에게 2~3매를 배포했다. 5일 뒤인 3월 26일은 송파리의 송파장날이었다. 이날 오후 3시 경 천중선(千重善, 46세 농업)이 앞장 서서 수백 명의 군중을 이끌고 조선독립만세를 외치 면서 장터를 순회한 후 날이 어두워지자 군중을 지휘 하여 독립만세를 부르며 송파리 헌병주재소 안으로 밀고 들어갔다. 돌마면 여수리 이시종(李時鍾, 19세, 농업)과 대왕면 서리 이재순(李載淳, 32세, 농업)도 참여한 가운데, 헌병 및 보조원들과 밀고 당기며 대 치하는 가운데 유리창도 깨졌다. 이어 면사무소로 몰 려가 전면 문과 창문의 유리를 전부 부수고, 내부 집 기를 파괴한 후 해산했다. 군서기가 와서 상황을 파 악하고, 헌병들은 경찰 관헌과 함께 경계에 돌입하였 다. 이날 사상자 없이 13명이 검거되었다. 중부면 3월 26일 중부면 산성리에서 약 200명이 만세시 위를 벌여 관공서와 민가 1곳이 파괴되었다. 다음날인 3월 27일 밤 8시 30분경 이전의 군청 소 재지인 중부면 산성리에서 중부면 수진동, 탄리, 탄 대리300여 명의 군중이 독립만세를 부르며 중부면 사무소로 쳐들어갔다. 밤 10시경 중부면장 석경환 (石瓊煥)이 달려나와 시위군중을 제지하다가 몽둥이 로 난타당해 전치 30일의 중상을 입었다. 헌병이 공 포를 발사하여 해산시켰다. 이날 1명이 죽고 2명이 부상당했다. 동부면 동부면에서도 같은 시기에 만세시위가 일어났다. 마츠나가 다케기치[松永武吉,1869.11.19~1936.1.1] 경기도장관은 「소요사건 상황에 대한 도장관 보고」 에서 다음과 같은 보고를 했다. “3월 26일 동부면에서는 150명가량의 시위군중이 자동차 통행을 막고 승객에게 만세를 부르도록 강요 했다.” 동부면 시위 상황을 보고한 경기도 장관 마츠나가 다케기치. 그는 1904년 11월부터 1908년 3월까지 일본 시마네현 지사를 지냈으며, 독도의 시마네현 편 입을 주도한 자였다. 그날 밤 10시경 동부면 풍산리 농민 김홍렬(金弘 烈)이 나서 마을 주민들에게 “조선독립만세를 불러야 만 한다”고 하며 약 40여명의 주민과 함께 풍산리 산 위로 가서 화톳불을 피우고, 다음날인 3월 27일 오전 3시경까지 새벽을 밝히며 ‘조선독립만세’를 외쳤다. 같은날인 3월 26일 동부면 교산리 구장 이대헌(李 동부면 시위 상황을 보고한 경기도 장관 마츠나가 다케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