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page
110 2024년 8월 테마가 있는 독립운동사 ② 순국 Focus 역사의 시선으로 리버사이드지방회 소속의 회원들은 대한인국민회 의 의무금 제도에도 충실하였다. 1912년 국민회 의 무금이 제대로 수합되지 못해 『신한민보』가 오 랫 동안 발행되지 못하였다. 그러나 리버사이드지방 회 회원들은 모두 의무금을 납부하여 『신한민보』 가 계속해서 발행될 수 있게 하였다. 당시 한인은 직장에 따라 30달러 내지 40달러의 월급을 받았 는데 백인 십장의 경우는 50~70달러를 받았다. 리 버사이드 지방의 한인들은 대부분 오렌지 농장 등 에서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생활은 비교적 안정 적이었다. 그러다 보니, 리버사이드지방회 운영에 필요한 자금은 충분하였고, 의무금도 다른 지역과 비교하면 잘 수합되었다. 북미 대한인국민회에서 리버사이드의 김용련에게 보낸 편지의 봉투 (1941.1) 리버사이드에 오랫 동안 정착하여 살았던 김인수의 하와이 이민 집 조(여권, 1903년) 김인수의 국민회 의무금 납입 영수증(1920.9.15.) 김용련의 구미위원부 공채금(의연금) 납입 영수증(1921.11.1) 김용련의 구미위원부 월례금 납입 영수증(1921.11.1) 김혜설의 구미위원부 공채금 납입 영수증(1920.7.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