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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 2024년 7월 순국 Focus   역사의 시선으로 3월의 전설(104회) 살해반, 순사보 오인영과 김문명, 백남열, 최성학, 홍 순근, 백남표, 기봉규 7명은 방화반을 맡았다. 독립만세 시위운동의 전개 “모두 몽둥이를 가지고 나오시오!” “장안, 우정면사무소와 순사 주재소를 때려 부수 고, 일본 순사를 쳐 죽일 것이니 한 집에 1명 이상씩 나오시오. 나오지 않으면 집에 불을 놓고, 가족은 다 때려죽인다 하요!” 4월 3일 아침 각 마을 구장들이 사환을 시켜 집집 마다 전달하였다. 석포리에서는 뒷산에 북을 걸어놓고 둥둥 쳐서 주 민들을 모았다. “우리는 한 사람도 가담하지 않은 사 람이 없이 다 갔다.” 석포리 후임 구장 김현갑이 검사 앞에서 증언했다. 수촌리나 다른 마을도 마찬가지였 다. 수촌리에서는 밀양산이 집결지였는데, 100여 명 이 모이자 독립만세를 연달아 부르며 장안면 사무소 로 갔다. 오전 10시 반 장안면 사무소 앞에 200명가량 집결 했다. 차병한, 차병석이 면사무소 안으로 들어가 면 장 김현묵을 끌어냈다. “면장도 독립만세 시위에 참여하시오!” 면장은 몽둥이를 들고 에워싸고 있는 군중을 보았 다. 면장 김현묵은 재빨리 변신했다. “할려면 죽을 각오를 하고 해야 한다.”고 짐짓 앞장 서는 듯한 모양새를 취하며 독립만세를 불렀다. “대한독립만세!” 군중들도 독립만세를 외쳤다. “대 한독립만세!” “대한독립만세!” “면장과 면 서기들이 앞장서시오!” 김현묵 면장과 5명의 면서기들이 등떠밀려 앞장섰 다. 장안면 시위대의 주력이 쌍봉산으로 출발하자 방 화반이 남아서 목조 초가집 면사무소를 돌과 몽둥이 로 두드려 부수고, 사무소 안의 서류와 집기를 꺼내 던져 짓밟았다. 낮 12시경 쌍봉산에는 각 마을에서 속속 도착하여 6~7백명 가량이 모였다. 해발 117.4m의 장안 우정 면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여서 사방이 다 보였다. 이 영쇠의 선창으로 다 같이 산천이 진동하도록 독립만 세를 불렀다. 시위군중은 1천 5백명으로 더 불어났다. 누군가가 나서서 연설했다. “우리는 나라를 위해 활동하고 있다. 면장이든 면 서기든 조금이라도 국가를 위해 진력하지 않는 자세 를 취하는 놈은 때려죽여라!”  이런 외침도 들렸다. “지금부터는 못자리 일할 것 없다. 송충이 잡을 필요도 없다!” “바닷가 간척공사도 안 해도 된다!” “대한독립 만세!” “대한독립 만세!” 시위대가 쌍봉산을 출발하여 독립만세를 부르며 장안면사무소 시위 직후 현장 검증도(이상 국사편찬위원회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