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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2월28일 금요일 11 (제218호) 독자마당 인터넷 환경은 우리나라가 세계 선두 주자 입니다. 인터넷으로 인한 편리함과 유용성은 정말 헤아릴 수 없이 많습니다. 내경우만해도인터넷은이미내생활속 에깊이파고들어내삶의일부가되었고, 이젠 인터넷 없는 세상을 상상하기조차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강렬한 빛 은강한그늘을동반하기마련입니다. 이 세상에는 모든 면에서 편리하고 쉽 고이익이되는일은없을것입니다.열가 지 중 아홉이 좋다하더라도 그로 인한 하 나정도의불편은나오게되어있습니다. 특히인터넷이광범위하게퍼지면서모 든 기관이나 조직의 대부분 게시판은 더 많은소통을위해서무기명으로게시판을 운영합니다. 그런데 그런 좋은 취지와는 다르게게시판이악용되기도합니다. 가끔은 익명 그 늘에 숨어 다른 사 람들을 난도질하는 걸 즐기는 저급한 글들이나 악플러들 때문에 인터넷을 시궁창 같다고 폄 하되기도 합니다. 특히연예인이나정치가들처럼대중관심 을 받고 있는 사람들은 익명 글이나 악플 러들좋은장난감이기도합니다. 이런 좋지 않은 악플 행태는 참 변하지 않는것같습니다. 2008년10월2일,스스로목숨을끊어대 한민국을 큰 충격에 빠트린 최진실 사건 이 있은 지 15년이 넘었지만 똑같은 일들 이또벌어지고있습니다.'아저씨'란영화 를 보면서 그 귀여움 속으로 흠뻑 빠지게 한 븮김새론븯이란 여배우가 최진실과 비슷 한상황에서목숨을버린것입니다. 연예인에 대한 문제는 언론이 자주 보 도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더 큰 문제는 기 사에 달린 댓글 들입니다. 이번에도 김새 론은 엄청난 악플들에 시달렸다고 합니다. 최진실이스스로생을마감한이유가무엇 이었던가요?최진실자살사건이후에도설리, 구하라등등어리고여린연예인들이스스로 목숨을끊은이유들은또무엇이었나요? CNN,워싱턴포스트(WP)등세계적유 명 외신들은 이런 일련의 사건들을 특집 보도하여 대한민국을 더 부끄럽고 처참 하게만들었습니다. CNN은"이번사건은온라인악성댓글 에 의한 K팝 스타들의 극심한 압박에 대 한 논의를 재점화했다"면서 세상을 떠난 설리(본명최진리)사례를덧붙였습니다. 2017년 스스로 목숨을 끊은 그룹 샤이니 김종현 도 언급했습니다. 또 WP는 K팝 스타들이 악플로 겪는 압박과 문제점을 지적하며"K팝스타들이팬들에의해엄 청난중압감을받고있다"고말했습니다. 외신들이 내린 결론은 "(한국은) 부유 한 국가들 가운데 가장 높은 자살률을 기 록하고있으며정신건강지원이부족하다 "며 "2명의 여가수(구하라와 설리)는 연 애나 실생활을 통제받았고, 사생활이 대 중에 (노출돼)검증을 받았으며악의적인 악플에시달려야했다"고꼬집었습니다. 이런상황에서또엊그제김새론배우가 똑같은일을당하고목숨을버린것입니다. 우리나라만 이러는 것일까요? 왜 그럴 까요?진보,보수이념싸움에악플들은더 심합니다. 도저히 눈으로 보고 읽기도 힘 든수준들입니다. 조그만 단체모임 단톡방이나 카페, 밴 드에서도마찬가지입니다.옳고그름에대 한 판단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한 쪽으로만100%옳은일은거의없습니다. 그럴지라도 애쓰게 글 쓰고 올리는 사 람을 생각하여 정중하게 자기 생각과는 다른 부분을 지적하고 자기생각만 밝히 면 됩니다. 그런데도 무작정적으로 비꼬 고 조롱하는 말로부터 시작하여 입에 담 지못할 쌍욕까지 하누 사람들이 있습니 다. 거기에 악의적 허위사실까지 만들어 내헛소문을유포하기도합니다. 이런 재미로 단 악플들로 인해 최진실, 구하라,설리,김새론등여러사람들이죽 기까지 했습니다. 이들은 유명인사라 알 려지기라도 했지만 알려지지 않은 죽음 은훨씬더많을것입니다. 이처럼 재미로 악플을 다는 자들은 야 비하기 짝이 없는 익명성에 숨어있는 살 인자나다름없습니다. 이들은 모두 다 찾아내어 살인죄 에 버 금가는죄로처벌했음합니다. 익명은 악의적인 글을 쓰는 사람들이 나 악 플러들을 위한 장치가 아닙니다. 근 본 적으로 견제 받지 않고 통제받지 않는 자유로운사고에대한존중입니다. 익명으로 글을 쓰는 사람들은 그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자기는 아무리 정의감 에 사로잡혀 쓴다고 할지라도 그 내용에 는완전100%진실이아닐수도있다는것 을 알아야 합니다.그리고 그것 때문에 크 게상처받는사람도있다는것을항상생 각해주의하고조심해야할일입니다. 익명으로 글을 올리거나 댓글을 다는 것은 사회적 책임감과 타인에 대한 배려 가큰사람만이할수있는일입니다. 인터넷상댓글의빛과그늘 박 철 홍 전남도의회前의원븡담양군종친회사무국장 뱚발뱞뱞행뱞뱞인:박순구 뱚취재편집:박상섭 뱚경영지원:박재기 기사제보븡광고신청븡구독안내 대표전화(055)352-7224 FAX(055)352-7225 뱚구독료년40,000 입금계좌:농협453013-55-000691 예금주:한빛신문 뱚뱜 50429 경남밀양시내일중앙길11밀성회관1층 뱚뱜 본지는신문윤리강령및그실천요강을준수합니다 (2007년1월12일등록번호대구다-01225) 500만박씨성손의대변지 2007년1월24일창간(월간) 풀어쓰는 茶山이야기 박석무 다산연구소이사장 다산의 저서들을 읽다 보면,탁월한 임 금이자 뛰어난 학자이던 정조대왕에 대 한 이야기가 참으로 많이 발견됩니다.그 렇게도 학문을 좋아하고 그렇게도 많은 독서를 했던 정조와 호학(好學)하고 호 고(好古)하던 다산은 생각이 같고 마음 까지 통해 물과 물고기의 만남과 같다는 수어지계(水魚之契)의 군신 관계였습니 다. 다산의 인생을 연대기로 기록한 『사 암선생연보(俟菴先生年譜)』의 다산 39 세(1799) 때의 기록이니, 그해 7월 26일 형조참의 벼슬에서 사직하여 벼슬에 있 지도 않을 때의 이야기입니다.물론 그때 정조는 48세로 참으로 많은 선정을 베풀 던그런시기였습니다. “(12월에 임금의 특별명령으로 ‘세서 례(洗書禮:책 한 권 읽기를 마치며 여는 간단한잔치)’때의어제시(御製詩)에화 답하는 시를 지어 올렸다.”라는 기록에 이어지는내용이있습니다.“이때에임금 이 온갖 나라의 기무(機務)를 살피는 여 가에 독서하기를 그치지 않았다.매번 경 서 한 권 읽기를 마칠 때마다 태빈(太嬪: 정조의 어머니)이 음식을 장만하여 세서 례를 하였는데,민간의 아동들이 하는 습 속을따랐다.이해겨울에임금이『춘추좌 전』을다읽었으므로태빈이또이예(禮) 를 베풀었다.이에 다산이 불리어 들어갔 다. 임금이 특별히 어제시를 내려주시며 화답의시를올리라고하였다.”라는내용 은많은이야기를하게해줍니다. 나라의 만기(萬機)를 살펴야 할 막중 한 책임과한치의 여가도 내기 어렵게 바 쁜임금의일정에서,틈만나면책을읽는 군왕 정조의 학문 좋아하는 모습을 발견 할수있습니다.그런자신의마음을제대 로 알아주고 이해할 사람이 신하 중에는 다산이라 믿고 그에게 그에 대한 이야기 를 시로 올리라고 했으니 정조와 다산의 관계가어떤사이였음을금방알수있습니 다.“이로부터 때때로 규장각의 아전을 보 내 어떤 때는 어제(御製)를 써서 올리라고 도 하고,어떤때는화답하는시를지어올 리라고도하였다.어제시가한달이면두세 차례나 이르도록 끊이지 않았다.”라고 말 하여시를지을때마다다산의평가를받고 싶어 하던 정조의 마음을 알게 해줍니다. 그런임금에그런신하,역시‘시군시신(是 君是臣)’이바로정조와다산이었습니다. 1800년 봄, 39세의 다산은 영영 낙향할 계획으로 전원인 고향 마을 마재로 돌아 가 버렸습니다.임금이 서울로 오라는 명 령을내려부득이 서울에왔더니승 지를시켜궁중에 교서(校書)할 장 소를새로꾸몄으 니 곧 돌아와 교 서하는 일을 시키 겠다고 말했다는 것입니다.그러면서“내가어찌그를버리 겠는가?(予豈捨渠哉)”라고 말하여 운명 하기 직전까지도 정조는 다산을 잊지도 버리지도 않고 끝까지 자신의 곁에 두기 를 그렇게도 원했음을 알게 됩니다. 운명이란 알 수가 없습니다. 6월 그믐 께면 다산을 다시 벼슬에 오르게 하겠다 던 정조는 그믐 하루 전인 6월 28일 끝내 세상을 뜨고 말았습니다. “너를 한번 기 어코올려서쓰겠다.”라던정조는형조참 의에서 물러난 다산을 더 승급시켜 부리 지를 못하고 운명하고 말았습니다.그 바 쁜 중에도 50이 다 된 나이에『춘추좌전』 을 정독하고 ‘책거리’의 잔치까지 베풀던 호학의 군주 정조는 호학의 신하 다산을 제대로 부리지도 못하고 떠났습니다. 여 기서 조선 후기 시대의 가느다란 개혁의 빛은끝내발하지못하고말았습니다. 학자 군주와 학자 신하 이제부터 우리 大韓民國은 시야를 지 구촌으로 돌려 세계경영할 때가 되었다. 국제적으로 G7의 위상에 세계 10위권 경 제대국이고 또 문화강국이다. 식민지를 경험한 나라로서는 유일하게 경제화, 민 주화, 문화화를 달성하여 선진국이 되었 다.그러나 아무리 그렇더라도 우리 대한 민국은 아주 취약한 국가다. 석유, 식량, 지하자원등부존자원이빈약하거나없기 때문에수출을열심히하여수입비용을마 련해야 하기 때문이다.세계 각국 다른 나 라들과 사이가 좋아야 하고, 기업인들은 철저한匠人정신으로열심히기술을개발 하고, 또 공직자들은 투철한 公僕의식으 로 정책방향을 잘 이끌어야 한다. 그러나 그렇게되기가쉽지가않다.왜그럴까? 우리 한국사회는 국민 전체적으로 精 神動力이 아주 역동적인 나라다. 직위가 높을수록겸손하고경청하면서반영해주 기를 바란다.겸손하지 않은 사람을 보면 절대로 용서하지 않으며 쉽게 넘어가지 도않는다.벼는익을수록고개를숙이고, 君子는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섭섭해하 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仁義禮智의 실 천을수천년간행동철학으로삼아살아온 데다 우리 대한민국 땅의 기운도 다른 나 라에비해아주강하기때문으로보인다. 우리는 大韓帝國 말기에 나라를 잃어 버렸다. 앞으로 또 잃어버리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첨예화한 미븡 일븡중븡러 강대국과 북한에 둘러싸인 우 리 대한민국의 운명은 국민이 깨어있어 야 지켜진다. 일선에서 시군구청 공무원 들의 영향력은 대단하다. 지역을 사실상 이끌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중앙부처 공 무원들의정책영향력은군청공무원들과 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나라를 이끌어가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회의원 의 영향력은 더 막강하다.최고의 국가정 책인법률을제정하기때문이다. 대한민국이 잘 되려면 국민의 民度가 높아져야 한다. 국민의 民度가 공직자들 의식수준인 官度와 정치인들의 治度를 좌우한다. 民度가 낮으면 官度와 治度는 절대로 높아질 수가 없다.공무원은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며, 국민에 대하여 책임을 진다는 헌법구절과 나라를 또 잃 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각오와 연결 하여 국민들이 깨어있어야 하고 民度가 높아져야 한다. 국민들이 현명해지고 깨 어나면공무원들과정치인들도현명해지 고 깨어난다. 국민들이 깨어있으면 공무 원과 정치인들이 겸손해지고 열심히 경 청하게된다. 필자는대한민국의지도자들은공직이 나 기업을 불문하고 자원봉사 활동에 참 여할 것을 제창한다.자원봉사 활동의 최 대 장점은 남을 돕는다는 것보다는,자신 이새로운체험을한다는것에있다.자기 가 미처 몰랐던 인생과 삶에 대하여 새롭 게알게될기회를갖게되어自我를발견 하고 自我를 성숙시켜,君子와 大人반열 에올라갈기반을만들기때문이다. 율곡선생님은 사자위인(仕者爲人)이 고 비위기야(非 爲己也)라, 벼슬 은 남을 위해 하 는 일이지 자기를 위해 하는 일이 아니다. 위고자 주어행도(位高者 主 於 行 道 ) 이 니 도불가행 즉가이퇴이(道不可行 則可以退 矣)라,높은벼슬에올라가면道(최고의정 책)를 행하는 일에 주안점을 두어야 하니, 道를 행할 수가 없으면 (다른사람이 대신 하게)바로물러나야한다고말씀하셨다. 고위공직자는 물론 기업CEO, 정치인 모두가 평생 마음에 새겨서 실천해야 할 행동강령이다. 우리한국에서는도시보다는농촌에서 흙수저로 태어나 고생하며 자란 사람들 이 나라를 위해 큰일을 많이 하고, 또 현 명하게 처신하는 경우가 많았다. 농악소 리를듣고자라고,학생몇안되는초등학 교와 중학교에서 수업으로 가축 키우고 농사짓는 일도 하면서 시련과 체험이라 는 흙수저 경험이 성장의 밑거름이 된 것 이다. 마을공동체 생활에서 체득한 헤아 리고 나누는 배려정신과 돈보다는 情을 중시하는 마음이 자산이 된 것이다.율곡 선생님도 선절이심((先絶利心) 연후라 야 가이학인(可以學仁)이라 하여, 이득 보려는 마음을 없애야 仁을 행할 수 있다 고 하였다. 고위공직자와 정치인들의 자 원봉사 활동은 사람을 겸손하게 만들고 경청하게만든다. 흙수저경험은아주중요한성공자산 박승주전여성가족부차관 능곡선생 탄신 500주년 기념 문집 발 간,능곡 박지형(能谷 朴之亨,1525~159 2)선생탄신500주년을기념하여『능곡 선생실기』를영인본(影印本)으로출간 하였다. 책을 발간하기 위해 후손 중랑 장공파 종친회장 박강환을 위시(爲始) 하여 문중에서 여러 해 동안 숙의(熟 議)를 거쳐 문집(文集)을 간행하기로 결정하고 드디어 올해 을사년 초에 세 상밖으로 나오게 되었다. 후손들은 능 곡선생의 사료(史料)들이 대부분 멸실 (滅失)되어 극소수의 교지(敎旨)와 교 첩(交睫),대소과급제교지등으로문집 을작성하고구성하기란쉽지않았다. 여러해동안능곡선생의사료를수집 하기위해 조선왕조실록,승정원일기,고 문서 및 고문집 등을통하여선생 과 연관(聯關)된 자료를 구할 수 있었다, 또한, 선 생이 여러 임지 (任地)에제수(除 授)된 지역사료 를 군(郡) , 읍(邑) 선생안(先生案)을 찾아 수록할 수 있었 다.책의내용을살펴보면선생의연보(年 報)를비롯하여고문서와유적,관아및읍 지,한시류및부록순으로수록되었다. 고문서및 유적에는문중종가(宗家) 에 보존되어 있는 선생과 후대의 대 소 과교지및 성균관전적(成均館典籍)교 첩(敎牒) 등을 수록하였으며, 관아(官 衙) 및 읍지(邑誌)에는 선생이 관직을 역임한 임지 청풍(淸風) ,인제(麟蹄) , 양성(陽城)읍지내역을수록하였다.특 히,선생이선조18년봉상시(奉常寺)주 부(主簿)로근무할때함께근무한관리 들과 풍류를 즐기는 태상계회 도(太常 契會圖) 그림을 수록하였다. 태상은 봉 사시의별칭으로수려한산수를그리고 화제(畵題)를 작성한 그림으로 『모진 세월속에서도함께푸른소나무의절개 를 가졌고, 어려운 환경에 처해도 지사 의 지조를 견고히 하였다네. 서로 기약 하지 아니한 정직한 사람과 돈독히 지 내니, 비단은 썩더라도 이름자는 남아 있을것이라네』라고화제에적고있다. 한시류(漢詩類)에는 선생의 유명한 시『견사정시(見思亭詩)』와 차운(次 韻)한 『고우봉별운(故友逢別韻)』등을 차례로 수록하였으며, 성균관 한림원 회원들이 능곡선생 탄신500주년 추모 를위해한시로작성한추모시(追慕詩) 를수록하였다. 능곡선생의현양사업(顯揚事業)으로2 017년 문학시비건립에 이어 문집발간은 후대에선생의인품과학문의깊이를새롭 게조명하며길이이어지고빛나길빈다. /박성호명예기자(함양박씨구소명종중) 능곡선생탄신500주년기념문집발간 산실또는멸실(滅失)된극소수 의교지(敎旨)와교첩(交睫),대 소과급제교지,시문등영인본 밀성박씨은산부원군파 제주도종친 회(회장 박승석)는 지난 2월 1일(토) 제주시애월읍하귀2리소재종친회관 에서정기총회를개최하였다. 정기총회개회에앞서오랜만에만난 종친들과 신년 인사 시간을 가져 서로 안부와 덕담을 나누었다. 또한 회순에 따라 처음으로 ‘종강삼시’를 종손 박규 남고문이선서로낭독하여종친들이실 천삼강을 되새기는 기회도 가졌다. 이 어 전직 박상홍 회장, 박진석 총무이사 와 박창배 재무이사에게 재임 동안 종 친회의 위상과 성장·발전을 위해 수고 해주신데대한보답으로재직공로패와 부상을수여하였다. 박승석회장은개회사를통해간밤부 터 강풍을 동반한 폭우로 궂은 날씨에 도 많은 종친들이 참석하여 회관개관 이래 회의장을 가득 메워 주셔서 감사 하다는 말씀과 함께,1년간 활동을 소회 하면서, 지난 상반기 이사회에서 종친 부인회발족을 승인해 주시고, 7월 사전 모임에서 회칙제정안과 임원선출까지 마쳤다면서, 오늘 최종 추인만 남아 있 는이역사적인자리에부인회임원님들 도참관하셨다면서인사소개도하였다. 또한반세기가지나가는동안역대회 장님들의 업적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 는자료가없어과거의업적을찾아‘연 혁’을 작성했다면서, 그 과정에서 60여 년 전 종손 가지인 애월읍 수산리에서 ‘수산문중’이 발족되어 최초 븮밀양박씨 문중족보븯발간과븮입도조묘재정비사 업븯등굵직굵직한사업을확인할수있 었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1977년에 ‘도 종친회’ 창립이후 반세기 동안 초대 박 형실 회장 등 역대회장들의 수고로 눈 부신발전을이룩하였다고강조하였다. 그 토대 위에서 저희들은 부족함이 없 이 황금기를 누리고 있다면서, 그 노고 에 이 자리를 빌려 존경과 경의를 표하 면서 선배님들의 이루어 놓은 수고가 헛되지 않고 지속적으로 유지 발전해 나갈 수 있도록 후손인 저희가 더욱 노 력하겠다는다짐을밝혔다. 또한오늘총회는지난1년동안종무 활동과정에서 문장추대와 부인회발족 추인도 안건으로 상정했다면서, 문장 과부인회가탄생하게된다면내적으로 는 문장·종손·종친회장이, 외적으로는 청년회·부인회·종친회가 각각 삼위일 체가 되어 종친회 위상을 높이고 자긍 심이 한층 상향시킬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고강조하였다.그러면서종친회의 주인이신 여러분들이 적극적인 관심과 동참을 당부하면서, 조상님의 음덕으 로 모든 종친님들의 소망이 다 이루어 지시고, 가정에 건강과 행복 이 늘 함께 하시길기원하면서개회사를마쳤다 이어 공석중인 문장 추대 건, 부인회 발족건,정자원입구현판제작설치건, 역대회장존영게시건,2024년도 수입· 지출결산·2025년도 사업계획 및 예산 (안)의결건등7개의심의안건을원안 통과하였다.이에박승석회장은원안통 과에 대해 감사인사를 드린 후, 회관이 없을 때인 1977년에 종친회 출범이후 어려운시기를겪으면서이룩한회장님 들의 업적과 흔적을 잊지 않기 위해 회 의실 벽면에 ‘역대회장 존영’을 게시하 여 존중과 예우를 보여주겠다고 하면 서,이를통해단합과화합을 이루는 정 신적 매개 역할을 기대할 수 있다고 강 조하였다. 한편 문장으로 추대된 박승준(朴丞 俊, 1947생, 사진)고문은 수락인사에서 많이 부족하다면서, 뷺종친께서 추대해 주신데대해개인적으로는영광이고또 한 고마운 말씀을 드립니다. 저가 미약 하지만 앞으로 모든 역량을 총 동원하 여 종친회의 발전에 최선을 다 하겠다뷻 면서 뷺종친님들도 마음을 한데 모아주 시기를바랍니다뷻라고하였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종료하 고, 종친이 운영하는 ‘해변여행횟집’으 로옮겨오찬을하며정담을나누었다. 밀성박씨은산부원군파제주도종친회제47차定總성 료 문장추대븡여성회창립추인등 종중체계정립 박승준문장 박승석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