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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 칼럼 • 을사늑약 120주년을 맞이하며 ‘나라 제대로 키우기’를 다시 생각한다 11 로 하는 민씨 척족의 가렴주구와 부패로 더욱 기울어가고 있었고, 더구나 1876년 2월에 일 본의 강요에 따라 개항하면서 몰려들어오는 열강의 침탈에 효율적으로 대응하지 못해 결 국 일본이 조선을 ‘보호하는 나라’로 만들기에 이르렀다. 군사력을 앞세운 일제의 강압 앞에 정면으 로 맞선 지도자들도 없지 않았다. 참정대신 한 규설이 그 대표적 지도자였다. 그러나 이완용 을 비롯한 ‘을사오적(乙巳五賊)’은 말할 것도 없고 지배층의 대부분은 그대로 굴복하거나 자진해서 협조했다. 고종의 시종무관장이던 민영환이 자결로써 순국한 사실이 빛나는 까 닭은 그 무리와는 다른 애국자가 있어 당대와 후세에 정신적 영향을 끼쳤다는 데 있다. 을사늑약은 5년 뒤 이른 바 ‘경술국치(庚戌 國恥)’로 이어졌다. 일제는 1910년 8월에 마침 내 조선의 국권을 완전히 빼앗아 그들의 표현 으로는 일제에 ‘병합’하고 말았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애국자들이 의병의 형태로 또는 망명의 형태로 일제에 항거했다. 그것이 1919년 3월 1일을 기점으로 항일독립운동으로 확산되고, 1919년 4월 11일에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 으로 승화되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오늘날의 엄중한 국내외 정세 이 대목에서 우리는 오늘날 우리나라가 직 면한 대내외 상황을 다시 살펴보게 된다. 혹시 우리나라를 쇠락과 심지어 망국으로 이끌려고 하는 국가나 세력은 없는지, 그리고 우리는 거 기에 제대로 대응하고 있는지 묻게 된다는 뜻 이다. 가장 경계해야 할 대상은 북한의 김정은 정 권이다.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총비서이면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회 위원장 인 김정은은 2023년 12월 30일에 열린 조선 로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북남관계가 한국 침략의 주역 이토 히로부미(한겨레신문 제공). 그는 을사늑약 후 한국통감으로 부임하였다. 을사늑약 조약문. 원본은 서울대학교 규장각 소장(독립기념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