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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6월30일 일요일 11 (제210호) 독자마당 박석무 다산연구소이사장 풀어쓰는 茶山이야기 세월이 참으로 빠릅니다. 우리 연구소 가창립된지만20년이됩니다(2004년6월 17일,창립기념식).숨 가쁘게 허덕이면서 20년을 보냈다니 한편으로는 감개무량하 기도합니다.연구를잘했는지잘못했는지 야 세상 사람들이 평가해 줄 일이지만,우 리는정말로온갖정성을다해서다산연구 에온마음을바친것만은사실입니다. 제가 1970년 전남대학교 대학원에 입 학하여 조선 법제사를 연구할 목적으로 본격적으로다산의저서들을읽기시작했 습니다. 2년 뒤에 법학석사 학위로 <다산 정약용의 법사상>이라는 논문이 통과되 었습니다.대학에서강의할여건이마련되 었지만, 학생운동으로 당국의 감시를 받 는 ‘신원특이자’라는 이유로 대학에 자리 를 잡지 못하고 중고등학교 교사로 많은 세월을 보내야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다 산연구에대한뜻을버리지못하고논문도 쓰고다산의글을우리말로번역하는일에 도게으르지않았습니다.최초의번역서는 다산의 서간문을 번역한 <유배지에서 보 낸편지>인데1979년에간행되었습니다. 1980년 5븡18민주항쟁에 연루되어 감옥 생활을하면서더열심히다산의책을읽어 서 출소 후에는 많은 글을 썼습니다. 그런 글을 모아 <애절양>이라는 제목으로 다산 시선집을 간행하고 <다산산문선>도 간행 했으며, <다산기행>이라는 저서도 출판했 습니다.1988년 정치의 계절을 맞아 국회로 들어갔지만 바쁜 생활에서도 논문도 쓰고 번역서도간행하면서다산연구의끈을놓 지않았습니다.2004년마침내정치를접고 다시 다산으로 돌아가겠다는 성명서를 발 표하고, 그해 6월 다산연구소를 창립하기 에이르렀습니다.20주년을맞는감회가새 롭기만합니다.다산학의석학들을이사진 에포진시키고다산연구의센터가되어온 국민에게 다산학의 진면목을 알리는 작업 을 중심에 두고 많은 일을 진행했습니다. 시작과 함께 ‘풀어쓰는 다산이야기’라는 제목으로다산의생각,다산의마음을현실 의일과접목해세상사람들이다산의생각 과마음을알아보도록온힘을기울여글을 써서 이메일로 보급했습니다. 처음에는 1 주일에 5차례, 3차례, 2차례, 1차례로 글을 보냈는데 지난해까지 1,200회가 넘었고 20 0자원고지가1만매에이르게되었습니다. 실학자다산의탁월한생각과사상중에서 지금제대로실천하지못하는논리를세상에 알리는일에가장큰관심을두고글을썼습니 다.“법의 적용은 마땅히 임금의 최측근부터 시작해야한다(用法宜自近習始).”“통치자가 밝은정치를하지못하는이유는자신의몸보 신에만영리해서백성들이당하고있는질곡 을가지고통치자에게항의하지않기때문이 다(官所以不明者 民工於謀身 不以犯官也).” “청렴이란 통치자들이 지켜야 할 본분이다 (廉者牧之本務).” “나는 공정과 청렴이라는 두글자의의미대로온갖정성을바쳐서나라 에 봉사하겠다(公 廉願效誠)” “언론 인은 위로는 임금 의 잘못을 공격해 야 하고 아래로는 백성들의 숨겨진 고통을 알려야 한 다(在言官 上攻袞 闕 下達民隱)” “유교의 근본 도리는 효제일 뿐이다(孔子之道 孝悌而已).” “독서는 인간 의본분이다(讀書吾人本分)”등다산의지혜 를알릴수있는대로알려왔습니다. 앞으로도 우리는 다산의 책을 번역하 고 풀이하는 일을 계속하렵니다. 이제는 다산에게서 배운 지혜를 우리가 바로 실 천하고 행동으로 옮기면서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실천하고 행동으로 옮기도록 온갖 노력을 기울이려고 합니다. 그동안 도 우리 연구소는 뜻있는 분들의 도움으 로 겨우겨우 유지해왔습니다. 관의 도움 을 바랐지만 시원한 도움은 주지 않아 이 제는 참으로 어려운 경영난에 처했습니 다.그동안 우리를 도와주신 많은 분들에 게 머리 숙여 감사의 말씀을 드리며, 더 많은 분들이 소액 기부금으로 우리를 도 와주시길 바랍니다. 다산으로 깨끗한 세 상이 오고, 다산이 원했던 정치, 곧 선치 (善治)가 이룩되어 우리가 모두 공평하 고 편안하게 살아가는 세상이 더 빨리 오 기를간절히바랍니다. 다산연구소 20년! 지방의 위기가 심각하다. 4차산업혁명 이급진전되고인공지능(AI)이발전되면 서 서울븡경기븡인천 수도권지역의 흡인력 이커져지방이수도권으로빨려들어가고 있다. 여기에 더하여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우리의저출산현상은대부분의지방 을인구소멸지역으로몰아가고있다. 어떻게 해야 지방을 살리고 인구도 유 지할 수 있을까? 1차적인 문제는 경제이 고 2차적인 문제는 교육이며 그 다음은 문화의 문제이다. 지방에 취업할만한 직 장이 없으니 학교만 졸업하면 일자리가 있는 수도권으로 몰려들고, 지방의 교육 여건이 열악하니 아이 잘키우고 싶은 부 모는 수도권으로 갈 수밖에 없으며,지방 에 문화가 없으니 지방에 취업한 젊은이 들도기회만되면지방을떠나려고한다. 어찌하면 좋을까? 지방을 살리고 지방의 인구를늘려지역소멸을막는비결은의외로 간단하다.지방에취직해도,지방에서교육시 켜도,지방에서살아도수도권에서사는것과 같으면 된다. 지방자치제가 민의 존중 행정 으로지역경제를활성화시키고지역을발전 시켜 주민의 삶을 풍요롭게 하자는 것이기 에,지방자치제도를잘만들면되는것이다. 수년전부터광역시와道를통합하여메가 시티만들자는논의가많아지고있다.부산븡 경남븡울산을 통합하여 부울경 메가시티를 만들자,대전븡충남븡세종시를 통합하여 충남 권메가시티를만들자,서울에구리,김포등 주변시군을편입시켜서울시를메가시티로 만들자는 논의들이다. 그리고 최근에는 대 구 광역시장이 대구시와 경북도를 통합하 는메가시티를만들어2026년지방선거를메 가시티차원에서치르자는제안을하였다. 메가시티는 왜 필요한가? 메가시티는 그 지역의성장(Growth)을위하여필요하다.성 장을 해야 국제적인 경쟁력이 생기고, 수도 권에빨려들어가지않는억지력,즉버티는 힘도 생긴다. 그렇게 메가시티가 지역에 성 장동력으로작용하기위해서는종전에없던 새로운 사무들을 가져야 한다. 단순하게 행 정구역만광역화되어서는의미가없다.서울 의 경우 만약 김포가 서울시에 편입된다면 서울시는 바다를 갖게 된다. 한강과 바다를 연결하여새로운지역발전구상이가능하기 에국제적으로서울의경쟁력이높아진다. 메가시티가 기존과는 다른 새로운 사무 들을 가져야 한다면 어떤 사무가 좋을까? ‘기업’을 살리는 사무라야 한다.지방이 소 멸되고인구가없어지는이유는취업할직 장이빈약하기때문이다.그간우리지방자 치단체들은 기업 살리는데 거의 무관심하 였다.기업에대한행정은규제행정위주였 고, 기업을 북돋아 주는 조장행정(助長行 政)은거의찾아볼수없었다.민선자치단 체장시대 30년이 되어가는데도 기업은 행 정의 대상인 ‘주민’에 포함되지 못한 것이 다. 그러니지방에 기업다운 기업이 없는 것은 어찌 보면 사필귀정이 다. 대구븡경북 두 광 역단체를통합하여 하나의광역자치단 체로만들고,廣域市와道에따로따로소속 되었던 자치구와 시군을 통합하여 관할하 는대구븡경북통합논의는정말시의적절하 고추진방향도정확하다.광역시장과도지사 중한명만두어대구경북전지역을관할하게 하자는 것은, 지휘권을 1원화시켜 강력하게 지역을성장발전시키자는것이기때문이다. 광역단체와기초자치단체는어떻게사무 를 배분하는 것이 좋을까? 재난분야를 제외 하고는 중복행정이 거의 없도록 하여야 한 다.통합광역시는기업을살리는친기업행정 을추진하면서,기업의판매시장이전세계적 으로확산되어야하기에세계시야행정을하 여야 한다. 그리되면 기초단체인 시군구는 사회복지 등‘사람’에 관한 행정을전담하면 된다. 광역과 기초간에 재난관리 등을 제외 하고는사무중복이없도록하는것이시도통 합의 효과를 배가시킨다. 금년 중 대구경북 자치도설치법이 국회에 제출되고, 내년 중 법률이통과되면서통합실무기이뤄지면20 26년지방선거는통합선거로치뤄지게된다. 시대적당위이니빨리서둘렀으면좋겠다. 대구븡경북市道통합은빨리해야할시대적당위 박승주전여성가족부차관 박근혜 정권 때 국정교과서가 크게 문 제된적이있었다.역사를한정권시각에 입맛을 맞추어 일률적으로 교과서화 해 서학생들에게가르치겠다는것이었다. 아주 잘못된 사고방식이었다. 그 역사 교과서 내용의 옳고 그름을 떠나 역사는 어떤 명분으로도 단일 시각으로 보아서 는절대안되기때문이다. 역사는 시대상황에 따라 그리고 각자 서 있는 위치에 따라 얼마든지 다른 시각으로 볼수있다.역사는한가지시각으로만볼수 있을만큼단순하지않다.물론다양한시각 도반드시역사적사실에는기초해야한다. 역사를보는다양한시각속에서당시역 사를 되새기면서 지금 우리를 살펴봐야 한 다.이런상황에서나는1145년고려인종때 김부식븮삼국사기븯도 지금 국정화 세력과 비슷한 주장을 하면 서 편찬에 들어갔다 는것에주목했다. 김부식은븮삼국사 기븯 편찬에 앞서 왕 에게 청한다. “지금 학사대부가 진한(秦漢) 역사에 대하여는 널리 통하나 우리나라 사실에 이르러서는 그시말을알지못하니매우유감스럽습니 다.또삼국고기(古記)로말하면누락된것 이 많아 후세에 권계로 삼지 못 하니 역사를 완성하여해와별처럼빛나게하소서.”하지 만 당시는 신채호가 ‘일천년래 최대사건’ 이 라고주장한묘청의난이김부식일파에의해 진압된 직후였다.그 당시 묘청 일파 정치적 목표는 부패하고 무기력한 개경 귀족대신 서 경인중심새정권을세우고자한것이었다. 그 과정에서 묘청일파는 금국정벌론과 대 위국이라는국명과븮천개븯라는자주적연호와 칭제건원을 주장하며 자주적 기백과 내정혁 신의욕도보였다.신채호는이난을‘낭불양가 대한학파의싸움이며,독립당대사대당의싸 움이며,진취사상대보수사상의싸움’으로규 정하였다.그리고묘청난이실패로돌아감으 로써 유가의 사대주의가 득세해 고구려적인 기상을잃어버리게되었다고애석해하였다. 묘청의자주적기백과진취적사상에깜짝 놀라유가주의와중국사대주의입장에서우 리역사를바로세우기위해삼국역사를기 록해야 한다는 김부식의 확신에 찬 주장에 인종은 역사 편찬을 명했고 1145년, 한국 최 초로 고대 역사를 체계적으로 구성한 정사 역사서,삼국사기가세상빛을보게된다.나 는 윗 신채효 말들이 김부식과 삼국사기를 아주부정적으로생각했다.그리고삼국사기 를편견에가득찬눈으로보아왔다. 물론 신채효 아니더라도 삼국사기에 대 한문제점은현재까지도끊임없이제기되고 있고논쟁중이다.먼저그중가장크게지적 되고있는삼국사기문제점을살펴보자. 첫 째, 김부식은 우리나라 기록을 불신 하면서 중국 기록만을 옳은 기록으로 보 고삼국사기를작성했다는것이다. 김부식이삼국사기를쓸때김부식은유 교사상을나라이념으로삼고중국을숭상 하는것으로정권의안정을도모코자했다. 김부식은삼국사기를쓰기전에다섯번이 나 중국을 다니면서 중국역사서를 섭렵했 다.사실 중국이 고조선시대나 고구려시대 에당한치욕을자신들의기록에써넣을리 가 만무했다.그런데도 김부식은 자기나라 역사를 쓰면서 중국시각에서 우리나라에 대해서그저귀퉁이에조금흘려쓴것을무 슨신주단지모시듯주워담아얼기설기엮 어역사로만들었다는비판을듣고있다. 둘째,삼국사기에'단군신화'를넣지않았 다는 것이다. 삼국사기를 보면 맨 첫 페이지 에나와야할단군신화가없다.그이유는김 부식이가지고있는유교주의사상과사대주 의에 있다는 것이다. 김부식 개인적 소신과 사상때문에삼국사기에단군신화가실려있 지 않았다는 것은 역사서가 국정화 되었을 때집필자의사상이나이념으로역사서가편 협되고왜곡될수있다는가장커다란문제 점을김부식삼국사기가보여주고있다. 세 번째, 삼국사기를 신라중심 역사를 편찬했다는것이다. 김부식은신라귀족출신이었다.고구려을 지문덕살수대첩,당태종과양만춘안시성싸 움등도중국측사료만참고하여고구려승리 를축소하고왜곡하여기록했다는것이다.또 한백 제역사는정말일방적으로축소하고편 협한시각으로깔보면썼다는것이다. 이세가지문제점을난콕집어정리했고 신문에기고까지했다.그러나이문제점들 은잘못알려져있었고또김부식으로는그 럴수밖에없는합리적이유도있었다. 그런데도 윗글을 쓸 때 당시 나는 지나 친편협된시각으로위세문제점에대한 그 어떠한 반론도 없이 기정사실화 했다. 그러한점을깊이반성하며위세가지문 제점에 대한 합리적 반론을 펼쳐 보고자 한다.(다음호에계속) 삼국사기와고대역사서들Ⅰ 박 철 홍 전남도의회前의원븡담양군종친회사무국장 우리주변에는 ‘느림의 미학’이라는 단어가 언제부터인가 성행(盛行)하고 있다.차로다니던도로에서볼수없었 던 것을 걸어서 가다보면 못 보던 것들 이눈에들어온다.늘그자리에있었을 것들이새롭게다가온다. 지금 세상은 빠른 것들의 세상이다. 결코 빨라질 수 없는 것조차 빠름을 따 르다 보면 넘어지는 일이 비일비재하 다.한시는풍류와선비정신을먼저떠 올리게 되고 느림의 미학을 찾아볼 수 있다. 한자를 읽는 것도 버거운데, 하 물며 시라니. 어려워하고 멀리하는 게 새삼스러울 건 아니다. 그러나 읽을수 록 씹을수록 깊은 맛이 우러나고 때론 한 구절에서 숨이 탁 막히는 공감에 영 혼이경련한다.유장할때는가없이묵 직하고 감각적일 때는 어떻게 하나의 글자가 이토록 신선한지 놀라움을 느 끼기에충분하다. 그런 한시에 푹 빠져 50여 년 째 모임 을 이끌며 창작활동과 우정을 나누는 모임이있다. ‘문우회(文友會)’52년 전 전북 장수 향교 전교를 지낸 원파 박수섭 선생이 주창하여, 원광대학교 한문학과 박금 규 교수, 전주지방병무청에서 정년을 맞은행산안재격.김제향교전교를역 임한극재윤주남,금구향교전교를역 임한수당배현식,전주동암고한문교 사를 지낸 혜미 이재승 선생 등 6인이 현재 시를 통해 삶을 공유하고 우정을 나누는 모임으로 그동안 가학등천(駕 鶴登天)을 하신 계원도 다수(多數)계 신다. 지난달4월30일전북남원시보절면 하신 경로당에서 가진 모임에서는 안 재격 계장이 후사를 두지 못하고 유명 을달리한숙모효열부삭영최씨의효 열비를 세운 뒤 소감을 적은 시(詩)에 차운하고 효열부 삭영최씨를 추모하 는 자리가 되어 안재격 선생의 시부터 차례로소개해본다.이때형식에구애 받지않고자유롭게짓는다. 한시 는 1구 (句)의 글 자 수 가 오 언 (五言 : 다섯 자)인 것과 칠언(七言 : 일곱 자)인 것의 두 가지로 나뉜다. 곧, 오언은 다섯 자가 1구를 이루는 시의 형식이며,칠언은일곱 자가 1구 를 이루는 시의 형식이다. 그리고 한 수(首)가 4구로 이루어지는 시의 형 식을 절구(絶句),한 수가 8구로 이루 어지는 시의 형식을 율시(律詩)라고 한다. 열부(烈婦) 삭영최씨는 전북 장수 군 산서면 월곡리에서 태어나 남원시 보절면 신파리 순흥 안준섭에게 출가 하였다. 그 효열이 눈물겹고 놀라워 조카 안재격 선생은 원파 박수섭 선 생에게 비문을 의뢰해 지난해 7월 비 (碑)를 세우고 그 감회를 적은 시이 다. 竪叔母朔寧崔氏孝烈碑 숙모삭영최 씨의효열비를세우고 耳聞高堂息(이문고당식)귀에는 고 당(高堂)탄식들려오는데 目迷出大門(목미출대문)눈이 흐릿 ‘대문을나오라’하네 雙飛三萬里(쌍비삼만리)짝지어 멀 리멀리날아가시고 鏡照老松魂(경조노송혼)거울 속에 비치는老松넋이여! 이시는 사언절구이다. ‘귀에는 고당 (高堂) 탄식 들려오는데’는 시부모께 서 행여죽으면안되는데걱정하는소 리이고.‘눈이흐릿대문을나오라하네븯 대문밖에는 남편이 손짓하고, 븮짝지어 멀리멀리 날아가시고븯 급기야 남편의 뒤를따르는데븮거울속에비치는老松 넋이여!븯 노송(절개)아래 세워진 비석 이밝게비추어져모든사람일깨워주 고있다는것이다. 후사 없이 돌아가신 숙모의 효열에 감복한 조카가 효열비를 세운다는 것 만으로도조카의심성을 알 수 있어 우 리사회에경종을울려주는듯하다. ▲원파박수섭선생이차운하다. 過崔孺人孝烈碑(과최유인효열비) 최유인효열비를지나며 日落烏翎盡(일락오령진)해지면 까 막날개지쳐버리고 梨花半月門(이화반월문)반월문 창 밖에는배꽃희더라 松雲回顧滅(송운회고멸)松雲이 돌 아보며사라지더니 千古映丹魂(천고영단혼)千古에 붉 은魂이비치는구나.... ‘해지면 까막날개 지쳐버리고’는 까 마귀가 하루 종일 어미에게 음식을 물 어다 주느라 날개 지쳐버리는 것으로 최유인이남편의병때문에떨어져있 으면서 시부모를 극진히 봉양하는데 서비롯되었고,‘반월문창밖에는배꽃 희더라’옛날 아녀자의 방문 유리창이 반달모양을 갖추는데 그 창으로 보이 는듯사라진다는뜻이다.여자의수절 즉 절개를 뜻한다. 이는 배꽃 필 무렵 두견새가 슬피 우는데 울다 지쳐 피를 삼키듯 소리가 애절하여 유인 최씨의 심정을 드러내는 듯 하다. ‘松雲이 돌 아보며 사라지더니’는 솔 모양 구름이 떠다니다 재를 넘는데 시부모를 못 잊 어 돌아보다 죽었다. ‘千古에 붉은 魂 이비치는구나.’는붉은혼이비친다는 것은 보절초등학교 앞에 세워진 비 (碑)가 지나가는 사람을 순화하고 절 개 있는 소나무 아래 거울처럼 천고에 비친다는것이다. ▲혜미(蕙楣) 이재승(李在承) 선생 이차운하다. 過崔孺人孝烈碑(과최유인효열비) 최유인효열비를지나며 可憐貞婦去(가련정부거)가련한 貞 婦가가버리니 山鳥泣旌門(산조읍정문)산새도 旌 門에서 울어댑니다.(비 위 언덕에 정 문이있다.) 寂寞向千載(적막향천재) 적막함은 천년을向하는데 焚香敬慕魂(분향경모혼) 분향하며 임을경모합니다. ▲극재(克齋) 윤주남(尹柱南) 선생 이차운하다. 過崔孺人孝烈碑(과최유인효열비) 최유인효열비를지나며 梅香寒雪휼 (매향한설체)매화는 찬 눈 뜰에 향기 다하고 梨白月光門(이자월광문)배꽃은 달 빛 문에 더욱 희더라 先竭鳥雛役(선갈조추역)까마귀 새 끼 역을 먼저 다하여 兩全照活魂(양전조활혼) 두 행적 온전하게산넋비치네 ▲수당(修堂) 배현식(裵鉉植) 선생 이차운하다 過崔孺人孝烈碑(과최유인효열비) 최유인효열비를지나며 一死全雙節(일사전쌍절)한번 죽어 두절개온전했는데 可憐未蒙門(가련미몽문) 가련 타 정려를받지못했네 恨深花夭折(한심화요절)꽃송이 일 찍 꺽인 한이 깊어서 借照老松魂(차조노송혼)오백년 노 송넋을빌려비치나? 한편, 효열부 유인 삭영최씨에 대해 서는 지난2월호 7면에소개한바있다. 부인은 병든 남편의 간호와 시부모를 모시는데 남편 몫까지 성심을 다했는 데 남편을 먼저 보내고 따라가기를 자 청했으나 이마저도 미수에 그쳐 청상 의 몸으로 시부모를 모시며 집안을 일 으킨열부이다. 그리고 문우회 창립부터 지금까지 이끌고 있는 원파 박수섭 선생의 본관 은 충주박씨로 한학자 화계 박상석 선 생의 아들이다. 화계선생은 일제강점 기 교육을 통하여 민족의식을 고취하 고 예속(禮俗)을 돈독하게 지키며 성 현의 도(道)를 후학들에게 가르쳐온 큰스승이었다. 충주박씨박수섭현종한시모임‘문우회(文友會)’50여년이끌어 창작활동과우정나누어 원파 박수섭 현종이 한시모임 ‘문우회’를 이끌며 회원들과 함께 시(詩)를 음미해 본다. 사진 왼쪽부터박수섭,안재격,박금규,이재승順 뱚발뱞뱞행뱞뱞인:박순구 뱚취재편집:박상섭 뱚경영지원:박재기 기사제보븡광고신청븡구독안내 대표전화(053)588-7300 FAX(053)581-0067 뱚구독료년40,000 입금계좌:농협453013-55-000691 예금주:한빛신문 뱚뱜 42612 대구달서구달구벌대로1221(이곡동538-2)성창B/D5층 뱚뱜 본지는신문윤리강령및그실천요강을준수합니다 (2007년1월12일등록번호대구다-01225) 500만박씨성손의대변지 2007년1월24일창간(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