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page
11 알면 상식이 되는 우리 역사 족보(族譜)의 유래 족보는 옛날 중국에서 왕실의 계통을 기술한 것이 효시가 되었다는 설이 있으며, 일반 백성들에게 일반화 된 것은 한(漢)나라 때 관직 등용을 위해 현량과(賢良科) 제도를 도입 하면서 후보 인물의 내력과 그 선대 조상들이 무슨 일을 했는지를 살펴보는 기록물이 그 시초라는 설이 있다. 그 후 중국 위(魏)나라 진(晉)나라, 남북조 시대를 거쳐서 수(隨)나 라가 통일을 한 후에 비로서 보학이란 학문이 연구되기 시작하였다는 설도 있다. 우리나라 족보는 고려 중엽 의종(毅宗)때 때 김관의(金寬毅)가 지은 왕대실록(王代實 錄) 등이 그 시작이라고 전해진다. 우리나라에 성씨가 도입된 것은 신라 말기에 중국의 예를 본받아 귀족계급에서 쓰기 시작하여 오다가 고려 11대 문종 때(1047-1082년) 성 (姓)을 쓰지 않은 사람은 과거시험에 응시 못하도록 제도화가 되면서 성씨가 급격히 많 이 생겨났다는 설이 통설이다. 족보를 체계화한 것은 조선왕조 세종 5년 1423년에 문화류씨(文化柳氏) 영락보(永樂 譜)가 효시라 하나, 서문만 있고 본문이 없으며 성종(成宗) 7년(1476년)에 발간된 안동 권씨(安東權氏) 성화보(成化譜)가 현재 서울대 규장각에 보존되어 있다. 그후 명종 임술 년(1562년)에 발간된 문화류씨 가정보(嘉靖譜)가 현족보와 비슷한 체계의 족보로 전해 지고 있다. ※ 족보(보첩)의 기원 족보는 어느 나라든지 다 있으며 특히 동양권에서는 중국이 가장 먼저 시작했다. 역 사는 육조시대[오(吳), 동진(東晉), 송(宋), 제(齊), 양(梁), 진(陳)]부터 시작되었다 하며, 특히 북송의 일대 문장가인 삼소[(三蘇-아버지 소순(蘇洵), 아들 소동파 소식(蘇軾), 소철(蘇轍)]에 의해서 편찬된 족보는 그 편제와 규모가 매우 우수하여 그 후부터 모든 족보를 편찬하는 사람들이 이를 표준으로 삼다보니 족보를 소보(蘇譜)로 칭하는 말까 지 전해졌다. 우리나라는 역대 왕실의 세보가 있고, 사대부의 집에서는 거의 가승(家 乘)이 마련되어 오다가 15세기 중엽 성종 때부터 족보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11page
족보의유래
11page
족보의유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