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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의 전설(109회) • 경기도 광주군 만세시위(2) 109 하게 광주 상황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긴급 보고했다. “3월 28일 오후 2시경 폭민 약 1,000명이 광주군 청을 습격하여 폭행을 가하고 제지에 불응하므로 부 득이 헌병이 발포하여 즉사자 5명, 부상자 10명이 발 생함. 폭민은 일시 물러났으나 이후 위험한 상태임. 일본인에게 위해를 가하려는 경향이 있어서 일본인 은 피난하여 한 곳에 모여있음.” 3월 29일 경안면 주막리(경안리) 군청 소재지 부근 3곳에서 각각 200~300명 가량의 군중이 만세시위 를 다시 벌였다. 주막리에서 군경이 파견되었다. 돌마면, 낙생면 오포면과 경안면에서 큰 시위가 벌어진 3월 28일 밤 8시경 군 소재지 서쪽 돌마면의 율리에서는 농민 한백봉(韓百鳳)이 독립만세를 위해 50명의 동리민들 을 불러 모았다. 이들이 독립만세를 부르며 행진해 가자 인근 여러 마을 사람들이 모여들어 곧 수백 명 의 군중을 이루었다. 이들은 태극기를 앞세우고 독립 만세를 부르며 돌마면 각 동리를 순회했는데, 광주 면, 돌마면과 낙생면에서 약 3,000명이 참여하여 다 음날인 3월 29일 저녁때까지 지칠 줄 모르고 계속되 었다. 언주면 3월 18일 언주면 역삼리 농민 이중인(李重仁)은 면 서기 이병찬이 국유지인 주민들의 소작지를 면의 묘 포로 지정하고 밭을 정리하자 이를 제지하여 공무집 행 방해죄로 입건되었다. 열흘 뒤인 3월 28일 광주 군내 각지에서 독립만세 시위의 불길이 타오르자 이 중인은 마을 주민 100여 명과 함께 마을 뒤쪽 산 위 에 올라 화톳불을 피우고 조선독립만세를 외쳤다. 남종면 4월 2일 광주군 동북쪽 끝 한강변 남종면의 검천 리에 사는 목재상 오룡이(吳龍伊)는 마을을 돌며 외 쳤다. “조선독립만세를 부를 것이니 모이시오!” 돌마면 이시종의 수형기록 카드 낙생면 이당호의 수형기록 카드